존재는 이유 없이, 원인 없이 또 필연성 없이 존재한다. 존재의 정의 자체가 우리에게 존재의 근원적인 우연성을 털어놓는다.
나는 존재를 파악한다. 나는 존재의 파악이다. 나는 존재의 파악'일 뿐이다.'
우리로 하여금 '고지식한 정신'을 단념하도록 하는 데 있어야 한다. 사실 '고지식한 정신'이 지닌 이중적인 특징은, 가치를 인간적인 주관성에서 독립한 초월적인 주어진 것으로 보는 것, 그리고 '바람직하다'는 성격을 사물의 존재론적 구조에서 사물의 단순한 물질적 구성으로 옮기는 것이다. (중략) 이 도덕은 자기를 불안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자기의 모든 목표를 모호하게 만들었다. 인간을 손을 더듬거리며 존재를 탐구하고 있고, 이 탐구가 자유로운 기도라는 것을 자기에게 숨기고 있다. 인간은 자기를, 마치 길 위에 놓여 있는 온갖 임무에 의해 자신이 '기다림을 요구받고' 있는 것처럼 만들고 있다. 온갖 대상은 무언의 요구이고, 인간은 그 자신에 있어서는 이런 요구에 대한 수동적인 복종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가 '가치를 현실에 존재하게 하는 존재'라는 것을 드러내 보여야 한다. 그때야말로 그의 자유는 그 자신을 의식하고, 가치의 유일한 원천으로서 불안 속에서 자기를 발견하며 또한 '세계'를 현실에 존재하게 하는 무를 발견할 것이다. 존재의 탐구, 즉자의 아유화가 그의 자유에 대해 '그 가능성'으로서 발견되자마자, 그의 자유는 불안에 의해 또 불안 속에서, 그런 가능이 가능으로 있는 것은 다른 가능의 가능성을 배경으로 할 때뿐이라는 것을 파악할 것이다. 그런데 그때까지는 설령 가능이 '마음대로' 선택되거나 취소될 수 있다 하더라고, 가능에 대한 모든 선택의 통일을 ㅇ루는 주제는 가치이고 '자기원인적인 존재자'의 이상적인 현전이었다. (중략) 자기를 자유로서 원하는 자유란, 요컨대 '그것이-있는 것으로-있지 않고' '그것이-있지 않은-것으로-있는' 하나의 존재이고, 이런 존재는 존재 이상으로서, '그것이-있지 않은-것으로-있고', '그것이-있는-것으로-있지 않은' 것을 선택하는 일이다.
- 샤르트르의 '존재와 무'는 많은 물음으로 그 글을 마친다. 그러나, 그가 제시한 존재의 모습, 즉, 미래를 향해 기투하는 존재로서의 존재, 지금의 자신이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향한 존재, 불안과 책임을 떠맡고 자유라는 위대한 능력을 가진 존재는 인간존재의 근원적인 힘을 인간 자신에게 돌려놓는다. 그는 '무'라는 개념을 도입시켜 허무적인 존재상을 그려내는 것이 아니라 절대적으로 적극적인 인간을 그려내고 있다. 존재의 근원에 대한 물음을 부조리한 우연적 탄생으로 정의해버리고, 대신 인간존재의 자유에 무한한 권한을 이끌어냄으로써 존재의 불안으로부터 신이나 제도로 도피해버리고자 하는 인간을 잡아끌어내 우리의 존재 자체를 똑바로 보도록 '직시하도록' 들이밀고 있다. 나의 존재에 대한 고민은 이제 이 책을 읽기 전과는 다른, 그 근원적 물음에서 그 실존적 물음으로 변화했다. 존재의 실현을 '생각'에서 '함'으로, '가치적 소유'가 아닌 '실존적 소유'로, 나의 즉자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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