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0일 화요일

주제 사라미구의 "돌뗏목"중

옳은 것이 틀린 것을 만들어 내고, 틀린 것이 옳은 것을 낳지. 괴로운 사람한테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위로로군. 이봐, 슬퍼하는 친구, 위로라는 건 없어, 인간은 위로할 수 없는 존재거든.
어쩌면 주제 아나이수의 이런 의견이 옳은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은 위로받을 수도 없고 위로받지도 않는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인간의 어떤 행동, 어는 모로 보나 무의미하다는 것 외에 다른 아무 의미도 없는 어떤 행동을 보면, 인간이 언젠가는 인간의 어깨에 기대 울 것이라는 희망을 버릴 수가 없다. 이미 너무 늦었을 때일 수도 있고, 이제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을 때일 수도 있지만.

(중략)

삶을 바꾸는 데는 한 평생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많이 생각하고, 이것저것 재보고 망설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곤 한다. 우리는 생각하고 또 생각한다. 우리는 원형의 운동을 하며 시간의 행로를 따라 움직인다. 더 이상 어쩔 힘이 없는 먼지 구름처럼, 낙엽처럼, 파편처럼. 차라리 허리케인이 부는 땅에 사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을. 그러나 어느 때는 딱 한마디면 된다. 가서 바위가 지나가는 것을 봅시다.

(중략)

하느님과 저 아들의 개가 원한다면 그들은 결국 다시 만날 것이니.

(중략)

그렇게까지 해서 잠깐 더 사는니 죽는 게 낫다. 여기서 끝장을 내자. 그들은 그곳에 머물러 기다리면서. 멀리 고요한 산, 장밋빛 아침, 뜨거운 오후의 짙푸른색, 별이 뜬 하늘을 응시했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보는 것일지도 몰랐다. 내 때가 찾아와도 나는 고개를 돌리지 않겠어.

- 사라미구의 환상적 이야기는 결코 가볍지 않다. 어느날 이유없이 땅이 갈라져 이베리아 반도가 바다를 표류하게 되었을 때, 과학도 종교도 아무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없을 때, 인간에게 가장 원초적으로 충족되어야 할 욕구중에 하나인 확실성이 사라졌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하는가? 사라미구는 특유의 해학적 필치로 인간의 어리석은 본성을 날카롭게 비꼰다. 이 극한적 상황,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을 수 있는 상황 (실제로 물리적 피해가 아무런 것도 없는 상황에 확실성만 결핍된 상황)에 4명의 이상한 우연의 능력을 부여받은 사람들은 그동안의 삶에 비할 바 없는 놀라운 여행을 한다. 그들의 여행은 이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조용하고 여유롭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멈춘 이 돌뗏목에서 이 4명만이 진정한 삶을 살았다. 결국 나머지 사람들은 우왕좌왕하기만 한 것이다. 우리 생도 이 끝없는 외부의 불확실성 속에 그냥 우왕좌왕하는 것만이 아닐까? 사라미구가 말한대로 "주기의 순환을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은 사람뿐이다. 사람에게는 한번뿐 그 이상은 없다." 고 말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