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25일 수요일

공자의 '논어' 중, 김원중 역

"말을 교묘하게 하고 얼굴빛을 꾸미는 자들에겐 인(仁)이  드물구나!"

"<시경>에서 '[칼로] 끊듯이, [줄로] 갈듯이, [정으로] 쪼듯이 [숫돌로] 윤을 내듯이'라고 한 것은, 이것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사야, 비로소 너와 더불어 <시>를 이야기할 수 있겠다."

"남이 자기를 알아주는 것을 근심하지 말고, [자기가] 남을 알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하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는 것이다."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미혹되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 말에 허물이 적고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봉은 그 안에 들어있다."

"그림 그리는 일은 흰 바탕 이후의 일이다."

"부유하고 귀함은 사람들이 바라는 바이지만 그것이 정당하게 얻은 것이 아니면 누려서는 안 된다. 가난함과 천함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바이지만, 그것이 정당하게 얻어진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벗어나려 해서는 안 된다. 군자가 인을 버리고 어디서 명성을 얻겠는가? 군자는 한 끼의 밥을 먹는 시간조차도 인을 어기지 않고, 황망하고 다급할 때도 반드시 여기에 근거하고, 넘어질 때도 반드시 여기에 근거한다."

"군자는 천하에 대하여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없고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어서, 의로움만 함께할 뿐이다."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면 중도에 그만둔다. 지금 너는 선을 긋고 있다."

"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촌스럽고, 꾸밈이 바탕을 이기면 텅 빈 듯하다. 꾸밈과 바탕이 고르게 조화를 이루고 난 뒤에야 군자인 것이다."

"무엇을 안다는 것은 그것을 좋아하는 것만 못하고,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만 못하다."

"군자는 태평하면서 너그럽고, 소인은 늘 걱정에 휩싸여 있다."

"... 군자가 도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세가지가 있다. 몸을 움직일 때는 조급함과 게으름을 멀리하고, 안색을 바로잡을 때는 믿음에 가깝도록 하며, 말을 내뱉을 때는 비속하거나 도리에 들어맞지 않는 것을 멀리한다. 제기를 다루는 일 따위의 소소한 일은 유사(그 일을 주관하는 낮은 벼슬아치)가 맡으면 된다."

공자께서는 네 가지를 절대 하지 않으셨다. 억측을 하지 않으셨고, 반드시 하겠다는 게 없으셨으며, 고집을 부리지 않으셨고, 나만이 옳다고 하지도 않으셨다.

"[학문하는 것은] 비유하자면 산을 쌓는 것과 같으니, 한 삼태기의 흙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두어도 내가 그만둔 것이다. 비유하자면 땅을 고르는 것과 같으니, 한 삼태기의 흙을 부어서 나아갈지라도 내가 [나아]가는 것이다."

"삶을 알지 못하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느냐?"

"서두르지 말고,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지 말아라. 서두르면 도달하지 못하고, 작은 이익을 보려고 하면 큰일을 이루지 못한다."

"강직함, 의연함, 질박함, 어눌함은 인仁에 가깝다."

"옛날에 배우는 자들은 자신의 수양을 위해서 했는데, 오늘날 배우는 자들은 남의 인정을 받기 위해서 한다."

"현명한 사람은 [혼란한] 세상을 피하고, 그다음 부류는 [어지러운] 지역을 피하며, 그다음 부류는 표정이 좋지 않은 사람을 피하고, 그다음은 [나쁜] 말을 피한다."

"군자는 곤궁함을 굳게 버티지만, 소인은 곤궁해지면 아무 짓이나 한다."

"사람이 멀리 생각하지 않으면 반드시 가까운 곳에 근심이 있다."

자공이 여쭈었다. 
"한마디 말로 평생 동안 실천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마도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하고자 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않는다."

"나는 온종일 먹지도 않고 밤새도록 잠자지 않고 생각해 보았지만, 유익함이 없었으며, 배우는 것이 더 나았다."

"군자는 [큰] 곧음을 가지고 있지만 [작은] 믿음을 고집하진 않는다."

"비록 작은 재주라도 반드시 볼만한 것이 있다. 하지만 [그 때문에] 멀리 가면서 흙을 묻히게 될까 두려워 군자는 하지 않는 것이다."

자장이 여쭈었다.
"무엇을 다섯 가지 미덕이라 합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군자는 은혜를 베풀면서도 낭비하지 않고, 수고롭더라도 원망하지 않으며, 욕망은 있어도 탐욕은 없고, 느긋하면서도 교만하지 않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은 것이다."


- 공자의 제자들이 공자의 말을 스승 사후에 집필한 책, '논어'. 
간결한 대화체의 함축적 문장이 마치 소크라테스의 대화를 상기시킬 정도로 닮아 있다. 두 철인의 삶도 어느정도는 닮아있다는 점이 신기하다. 
'논어'의 내용은 너무도 익숙할 정도로 어려서부터 들어온 내용이다. 그러나, 단편적인 내용들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봄으로서 공자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더 이해할 수 있었던 부분이 있다. 공자가 유교적인 예를 중시했지만, 그보다는 인과 도를 그 앞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기원전의 사상가가 현대에까지도 통용되는 가치를 역설했는지, 그리고 그 가치가 서구의 그것과도  비슷한 면이 있음을 새삼스레 느끼게 된다. 
오직 예의 형식만을 중요시하는 현대에 와서, "군자는 천하에 대하여 꼭 그래야만 하는 것도 없고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없어서, 의로움만 함께할 뿐이다." 라는 공자의 말씀을 한 번쯤 깊이 새겨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2013년 9월 12일 목요일

J. Slocum의 "Sailing Alone Around the World" 중

I watched light after light sink astern as I sailed into the unbounded sea, till Sambro, the last of them all, was below the horizon. The Spray was then alone, and sailing on, she held her course. July 4, at 6 a.m., I put in double reefs, and at 8:30 a.m. turned out all reefs. At 9:40 p.m. I raised the sheen only of the light on the west end of Sable Island, which may also be called the Island of Tragedies. The fog, which till this moment had held off, now lowered over the sea like a pall. I was in a world of fog, shut off from the universe. I did not see any more of the light. By the lead, which I cast often, I found that a little after midnight I was passing the east point of the island, and should soon be clear of dangers of land and shoals.

Let one be without a friend, and see what will happen!

Whatever the danger may have been, much or little, I can truly say that the moment was the most serene of my life.

The Spray now reached away for Coffee Island, whihc I sighted on my birthday, February 20, 1896.

One wave, in the evening, larger than others that had threatened all day, - one such as sailors call "fine-weather seas," - broke over the sloop fore and aft. It washed over me at the helm, the last that sept over the Spray off Cape Horn. It seemed to wash away old regrets. All my troubles were now astern; summer was ahead; all the world was again before me. The wind was even literally fair. My "trick" at the wheel was now up, and it was 5 p.m. I had stood at the helm since eleven o'clock the morning before, or thirty hours.
Then the time to uncover my head, for I sailed alone with God. The vast ocean was again around me, and the horizon was unbroken by land.

four mintues, we all know, representing one degree. This, briefly, is the principle on which longitude is found independent of chronometers. The work of the lunarian, though seldom prctised in these days of chronometers, is beautifully edifying,m and there is nothing in the realm of navigation that lifes one's heart up more in adoration.

To be alone forty-three days would seem a long time, but in reality, even here, winged moments flew lightly by,

The first name on the Spray's visitors' book in the home port was written by the one who always said, "The Spray will come back."


- 이 책은 Joshua Slocum 이라는 사람이 1895년 돛대 하나 달린 소형 범선으로 3년동안 46,000마일의 세계를 항해한 기록이다. Sail boat의 선장이었던 Slocum은 steam boat의 등장으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항해 기술이 점점 쓸모없어지는 것을 느끼며, 재정적으로도 힘든 상황에서 37풋트의 굴잡이 범선을 스스로 개조해 (거의 새로 만들어) 항해를 시작한다. 미동부 Rhode Island에서 시작한 항해는 유럽, 호주, 아프리카 등을 거쳐 다시 미동부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많은 일들을 겪게 되지만, 혼자 그것도 바람으로만 갈 수 있는 작은 범선으로 항해를 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Source: http://www.municipalities.com/islandscap/index.htm

내게 와 닿은 것은 두가지, 하나는 "Alone"이라는 것, 다른 하나는 "Courage".
어디론가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과 망망대해로 혼자 작은 범선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은 다른 일이다. 생명을 내걸은 고독, 그것을 추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며칠을 방향타를 떠나지 못하는 거친 바다에서 그는 완전한 바다를 느꼈다고, 혼자서 신과의 항해를 했다고 말한다. 그 항해에서 어떤 신대륙이나 새로운 섬을 발견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그 항해 자체가 그의 목적이나 의미였다고 결론에서 말하고 있다.
내게는 알 수 없는 일, 그와 같이 막막한 거친 바다로 혼자 나가지 않고서는 느끼지 못할 그 마음을, 그의 회고를 통해 조금의 엿보고 조금은 이해하고, 인생의 항해에서 혼자 떨어져도 그리 두렵지 않을 것과 같은 위로를 받은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