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이인성의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중

흔적, 지운 흔적. 지운 흔적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지워진 흔적. 기억의 풍경화 속에 그려지다 지워진 흔적. 태풍을 겪어 만신창이가 된 뒤에도, 그것만은 지우고 싶었던 무엇인가의 흔적. 너무 사무쳐서 숨김이 뒤늦을 수밖에 없었던 그 무엇의 흔적. 풍경화 전체에 사무침을 번지게 하는, 사무침의 샘인 상처의 흔적. 풍경화 뒤에 겹쳐진, 더 먼 시간의 풍경화로 가는 문을 여는 흔적...

미쳤다고 해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0시부터 24시까지, 광기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닐진대,, 미치고 싶다 했다가, 미칠 듯했다가, 미쳐지지 않다가, 미쳤다가, 미친 게 싫다 했다가, 미친 게 되고 말았다가 할, 유동체의 그녀에게는, 그러나,, 타인의 눈에 미침으로만 화석화되어 있는 그녀 자신을 마주했던, 그 상황 자체가 가혹한 징벌일 수 있었다. 상황 자체가 가혹한 징벌이었던 사정은,, 아무 개연성도 없이 그녀의 허구에 막무가내로 휘말려들어, 덩달아 미칠 것 같던,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던, 네 처지도 결코 덜할 것이 없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막연한 가능성에 매달려 덜컹거릴 그는, 한 작은 마을을 가로질러 나가려다. 문득 야산 앞에 길을 차단당하고 나서야, 더 정확히는, 차를 돌릴 공간이 없어 온 길을 그대로 뒷걸음질쳐 마을 어귀의 구멍가게 앞까지 되돌아와 차를 세우고 나서야, 제가 처한 정황을 파악할 것이다. 뭐에 홀린 게 아닌가 싶게 그가 길을 잃었음을, 헤맬 길조차도 끊겨버렸음을.
잠시, 그는 한낮의 복판에서 한밤에 묶인 모습잉ㄹ 것이다. 멍하니 자신을 놓아버리자, 하늘은 빠른 속도로 컴컴해질 것이고, 해였던 붉은 달이 푸른 구름 사이로 흐를 것이다. 그곳으로 들어왔던 길은 멍석처럼 되말려 어디로 사라졌는지, 돌아나갈 길조차 잃은 그는 그때 그 어디에도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혼잣속 이야기는 미침이었고, 미침은 갇힘이었던 것이리라.

죽음처럼 아득한, 텅 빈 깊이로 물을 감추고 있는 우물이여! 땅속에 고인 둥근 물의 집, 우물이여!

평범한 광증들, 이미 어둠이고 구멍인 존재의 의미를 찾는. 찾는 그 과정 자체가 잠깐이나마 한 송이 꽃으로라도 피었다 지면 다행이련만, 위안이 되련만.

너의 그 울음은, 혹시 하는 지푸라기 잡듯, 하룻동안 유보시켜본들 역시 헛될 것이어서,, 다음날 네가 그 호수가에 가 있겠다는 말에, 시답쟎은 감상주의는 집어치우라고, 신성한 죽음을 모독하지 말라고, 분노에 차서 전화를 끊는 그녀는 이미 너의 그녀가 아니었으매,, 다음날 실제로 달라질 것이라곤, 거사의 장소가 도서관 옥상에서 인문관 옥상으로 바뀐 것뿐,, 비명조차 억눌렸을 햇살 가득한 학교 교정의 공간으로부터,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틀을 짜갔을 예정된 시간으로부터, 모든 것을 알면서도 도망친 것인 동시에 알았기에 쫓겨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너는, 오로지,, 엊그제까지 네 곁에 있던 그 죽은 이의 살아 있었음, 그걸 어이 할거나,, 넋이 빠져 몇 끼니를 걸렀는지 상관도 없이, 틀어막고 터뜨리는 울음만의 힘으로, 누구를 용서할 수도 누구로부터 용서받을 수도 없었던 호수가의 밤을 지샐 것이었다.

속을가늠할수없는천길깊이기억의바다가있고
그리고
우리는처음엔무엇이어떻게될것이낙를전혀모르면서그기억의바다에서기억의밥을물어오라고머릿속물고기를끄집어내띄워보낼것인데때로그깊에홀린어떤물고기들이그깊이속으로영영가라앉아머릿속의기억력의세포들이점점이함께사라져도본능적인기억에의허기가커지면커질수록자꾸한마리또한마리무수한물고기들을바닷속저밑으로내려보낼것이나
그러나
물고기들은한마리도돌아오지않을것인데모든물고기들이기억의해저에수장되기때문은물론아니고그바다에서는기억이곧형체없는물이라서다만느낌의물살이라서어떤성질의해류들이라서물고기들이그냥기억의물속에잠겨제몸으로물을품고밀치며저스스로가기억속을떠도는기억의한형상이자유동하는물의형상을순간적으로조가해내는존재로서얕은곳에서깊으곳까지제자리를찾아유영할것이때문으로그래서물위로는아무것도갖다주지않을것이라면
그러면
우리는이번엔기억의형상이된그물고기들을잡아올리기라도하려고그물을드리워내릴텐데기억에의맹목이크면클수록더깊이자꾸깊이동아줄을늘여내릴수밖에없을터라그렇게펼쳐진그물에제물고기들을쓸어담고야말것이긴하겠지만어느새저희들끼리번식하지까지한그물고기들은이미너무많고살쪄무거울것이기에또그물고기들이가있는자리는너무깊어아마도그게더벅찰물살과해류의힘도너무무거울것이기에아무리기를써도끌어올릴힘에는못미칠지니다시는그물을거두을일수없음에도
그럼에도
그깊은물속에서수면까지전해져올것물가에선땅끝의감각에도저릿하게밀려들것그것은순수하게느낌으로만받아들여야하는것이겠지만그그물속에담긴기억의작은형체로서의물고기들이그물속에서뒤척이며일으키는자기들만의또다른물살일것인즉단순한느낌은느낌이라할지라도와닿은감은이상하게구체적인말하자면경험적인느낌으로서희미하게라도기억의형체가변형된기억의무늬와같을것이므로
그로므로
우리는기억의바다표면으로떠오르는그기억의무늬인파도나물거품이일렁이며파열하며소리치며불러들이는아련한추측과그러다보면자연스런짝으로끼여드는상상으로그기억의형체를얼만큼은되살려낼것인바그것이어디까지가사실이고어디까지가허구인지는모를것이되그사실과허구의복합체가전원처럼충전된으로하여
그리하여

......그리하여 홀연히, 그와 그녀, 그들은 기억의 바다를 건너듯 잠적하리라.

양파처럼 끝없이 벗겨지면서도 끝없이 껍질뿐인 것이 있지. 희망이라는 거. 그래서 미치는 것일까, 그 충족되지 않는 희망의 켜를 뜯으면서도 끝내 충족에의 희망에 매달리다가? 무엇이 그토록 그 희망에 미치게까지 하도록 한 존재를 마비시키는 것일까? 머릿속에 부어지는 어떤 독이? 어떤 근원적인 결핍 앞에서, 그 근원적인 결핍이 왜 근원적인 결핍이어야 하느냐고 저항하며 되물을 때의 깊은 슬픔이?
하늘의 암청색 너머에서 칠흑이 쏟아지는 것 같다.


- 대학교 시절, 그렇게도 좋아했던 이인성의 책들. 그 많은 이동에도 20년을 가까이 끌고 다녔다. 가끔식 펴보다가 오늘은 한 권을 꺼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그리도 읽어도, 감탄을 자아내는... 그리고 또, 서글퍼지는 책이다.
포스트 모던의 대표적 작가라고는 하나, 나는 그에게서 생의 허무에 대고 실존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을 본다. 그의 실험적 문장의 유영속에서 인간 존재에의 깊은 성찰과 고뇌가 묻어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잔잔히 비쳐난다. 그렇다. 깊이 드리운 그물에서 건져질 것이 무엇이던가? 그 무엇이던가 간에, 끌어올릴 수 조차 없는 것을... 그러나, 인간은 그저 그물을 던지고 그 수면의 파장으로라도 무엇인가를 보려고 노력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 존재자체의 부조리와 허무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져 고개를 돌리고 싶어질 지라도, 한겨울에 혼자 꽃을 피운 동백처럼 차라리 그 과정이라도 꽃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부서질 듯한 문장들에서 조심스럽게 읽어본다.

2013년 10월 12일 토요일

Rilke의 'Testament' 중

no matter how widely it draws its orbit through the heavens, its milky way with billions of the blood's stars, the land beneath these heavens is pregnant with calamities.

Artists, do not believe that your test lies in the work. You are not what you pretend to be, and what this or that one, not knowing any better, may take you for, until the work has become your very nature to such an extent that you cannot do otherwise than prove yourself in it. Working thus, you are the masterly thrown spear: (skip) what could be more certain than your flight?
Your test, however, is that you are not always thrown. (skip) that She forgets you. This is the time of temptation, when you fell unused, incapable. (skip) Then, when you do not lie there very heavily, diversions exercise you and try to see to what other uses you can be put. As a blind man's staff, as one of the rods in a grating, or as the balancing pole of a tight-rope walker. Or else they are capable of planting you in the soil of fate, for the mireacle of seasons to happen to you and for you perhaps to sprout small green leaves of happiness...
O then, bronze one: lie heavy.
Be spear. Be spear. Be spear!
(skip) It is the passion for the while. Its result: equanimity and equilibrium of the totality.

We, however, who stand at the incomprehensible point of intersection of so many different and contradictory worlds, find ourselves in the situation of suddenly being assaulted by a heaviness that has no connection with our abilities and training: an alien heaviness. (skip)
I believe therefore that, already as a child, I never prayed for anything but my heaviness, in order for that to befall me which is my own and not, by mistake, the joiner's or the hack driver's or the soldier's, because I want to recognize myself in my heaviest.

My aloneness, this most peculiar characteristic of my existence:

The displeasure of the unaccomplished now also attacks my body like rust; even sleep refuses its balm - : into half-wakefulness my pulse beats against my temples like heavy steps that cannot find peace.
(skip) that I don't belong to those who can be consoled by love.

By one evening, I could bear it no longer. The protective, ever-giving quiet of the house and my horrible exposure at its center, threw such discord into my heart that I thought I could not go on living. Unable to read, and not even capable of gazing into the usually so consoling fire of the pine logs, I fetched some random folders from the shelves of the bookcase, whic I had never opened before, and forced myself to turn page after page. (skip) Where to? Where to?
Where to, toward freedom? Where to, toward the equanimity of true existence? Where to, toward innocence, towards the no longer dispensable?

I am surprised by something like the prescient shimmer of a new spiritual joy: (skip) that inside me light and darkness must not be determined by the overriding influence of one person, but only by something nameless. (skip) Behind my self.

After six years of destruction and obstruction I have not made use of the circumstances that were offered me with B... for the undeferrable inner task; fate has wrung it from my hands. I have to admit that to myself.
(skip) it is not in its own constellation, it is not the heart of my life.
(skip) So that they not use me up for their happiness, but stand by me to help me unfold that deepest, loneliest happiness in me, without whose Great Proofs they would, in the end never have loved me.


- 릴케가 1921년 'Das Testament'라는 제목으로 모아 편집자에게 건넨 노트와 편지의 부분들은 그의 사후 50년이 되기까지는 공개되지 않은 채로 있었다. 이 'Testament 유서'라는 제목이 붙여진 단편적인 글들은 작가 혹은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좌절, 간간히 느낄 수 있는 희열, 소명 등의 솔직한 생각과 감정들이 릴케 특유의 아름다운 문장으로 드러난다.
'창 spear'으로서의 예술가의 삶이, 때로는 다른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오해되더라도, 그 과녁을 향한 비행 자체에 그 기쁨과 목적이 있음을... 무겁게 땅바닥에 누워있더라도 그 창으로써의 운명적인 비행을 기다리는 작가의 마음이, 삶의 유희와 안정을 등지고 고독을 택할 수 밖에 없는 운명적 작가의 삶이 가슴 시리게 느껴지는 애달픈 글.

2013년 10월 11일 금요일

노자의 '노자 (도덕경)' 중, 김원중 역

그러므로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고, 어려움과 쉬dn은 서로를 이루어주며, 길고 짧음은 서로 드러내고, 높고 낮음은 서로 기울며, 곡조와 소리는 서로 조화롭고, 앞과 뒤는 서로를 따른다. 이 때문에 성인은 무위의 일에 머무르면서 말없는 가르침을 행한다. 만물이 일어나도  말하지 않으며, 생겨나게 하고서도 소유하지 않으며, 해놓고도 뽐내지 않으며, 공을 이루고도 머물지 않는다.
머물러 있지 않기에 떠나지 않는다.

인간이 멋대로 정한 표준이라는 틀을 노자는 갑갑해한다. (중략)
인간의 지식은 주관적이고 구별은 무가치하다고 보는 노자는, 자기와 다른 것을 구분하고 사소한 것을 따지는 사회의 가치 체계와 규범이 대립과 경쟁을 유발시켜 인류의 불행을 초래했다고 본다.

하늘은 오래가고 땅은 장구하다.
하늘과 땅이 오래가고도 장구할 수 있는 까닭은 그것들이 자신만 살려고 하지 않으므로, 오래도록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다섯 가지 색깔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고, 다섯 가지 소리가 사람의 귀를 먹게 하며, 다섯 가지 맛이 사람의 입맛을 상하게 한다.
말달리기와 사냥하는 일이 사람의 마음을 미치게 만들고,
얻기 어려운 재화가 사람의 행동을 방해하게 한다.

"도룡기"란 말이 있다. '도룡', 즉 용을 잡는 기술은 제아무리 높은 수준이라도 쓸데없다는 말로서 '도룡지술'이라고도 한다.

말을 별로 하지 않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므로 회오리바람은 아침나절 내내 불지 못하고, 소나기는 하루 종일 내리지 못한다. 누가 이렇게 하는가? 천지이다.
천지도 오히려 지속될 수 없거늘 하물며 사람에 있어서랴!

발돋움하여 서 있는 사람은 (오래) 서 있을 수 없고,
다리를 벌려 걷는 사람은 (오래) 걸을 수 없다.
스스로를 드러내려는 사람은 현명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옳다고 여기는 사람은 드러나지 못하며,
스스로를 자랑하는 사람은 공이 없어지고,
스스로를 뽐내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것을 도에서 본다면 남은 음식이요, 군더더기 행동이라고 한다.
만물은 그것을 싫어하기에 도를 터득한 자는 머물지 않는다.

무거운 것은 가벼운 것의 근본이 되고, 고요한 것은 조급함의 임금이 된다.

천하라는 신령한 기물은, (억지로) 할 수가 없는 것이다. (억지로) 하려고 하는 자는 실패하고, 잡으려 하는 자는 그것을 잃는다. (중략)
이 때문에 성인은 극단적인 것을 없애고 사치스러운 것을 없애며 지나친 것을 없애는 것이다.

승리해도 불미스럽게 여겨야 하니, 그것을 찬미하는 사람은 바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이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천하에서 뜻을 얻지 못할 것이다. (중략)
죽인 사람이 많으면 비통한 마음으로 임하고, 전쟁에 이기더라도 상례에 따라 처리한다.

남을 아는 사람은 지혜롭지만, 자신을 아는 사람은 현명하다.
남을 이기는 사람은 힘이 있지만, 자신을 이기는 사람은 강하다.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부유하지만, 힘써 행하는 사람은 뜻을 얻는다.
그 자신이 있는 곳을 잃지 않는 사람은 오래가지만, 죽더라도 (도가) 없어지지 않는 사람은 천수를 누린다.

가장 높은 선비는 도를 들으면 부지런히 그것을 실행하고, 중간 선비는 도를 들으면 가지고 있는 듯 하기도 하고 잃어버린 듯 하기도 하며, 가장 낮은 선비는 도를 들으면 크게 비웃으니, (그런 선비가) 비웃지 않으면 도가 될 만한 것이 못 된다.

물이 강한 이유는 "형체가 없는 (무유)"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물이 아름다운 이유는 낮은 데를 지향하고 부드럽게 만물을 감싸면서 생육하고 때러는 "수적천석"이란 말처럼 돌도 뚫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니 천하에서 물보다 강한 것은 없고 그것을 이길 수 있는 것도 없다.

문을 나서지 않고도 천하의 일을 알고,
들창을 엿보지 않아도 하늘의 이치를 볼 수 있다.
그 나가는 것이 멀어질수록 그 지혜는 더욱 적어진다.
이 때문에 성인은 다니지 않아도 알고, 보지 않아도 밝아지고, 하지 않고도 이룬다.

우리가 흔히 지식을 얘기하지만, 아는 것이 먼 곳까지 미치게 되면 가까이에 있는 일을 모른다. (중략) "고기 한 점 먹고 솥 안의 고기 맛을 다 알고, 깃털과 숯을 매달아놓고서 방 공기가 건조하지 습한지 알 수 있다. 이는 사소한 것으로 큰 것을 아는 것이다. 낙엽 하나를 보고 한 해가 저물어가는 것을 알고, 항아리 속의 얼음을 보고 천하가 추워졌음을 안다. 이것은 가까운 것으로 먼 것을 논하는 것이다."

산속 스님은 날짜 헤아리지 않고
낙엽 하나로 천하에 가을이 왔음을 아네.

낳고도 소유하지 않고, 하고도 의지하지 않으며, 자라게 해주고도 주재하지 않으니, 이를 현묘한 덕이라고 한다.

"명"은 천하 만물의 전체적인 이치를 헤아리는 능력을 말하는 것으로 선입견에 사로잡히지 않는 넓은 시야를 아우르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

나에게 확실하게 잘 아는 사람이 있어 대도를 가게 한다 하더라고, 오직 샛길로 가게 될까 두렵다.
대도는 아주 평탄하나, 백성은 지름길을 좋아한다.
조정은 아주 치워져 있으며, 밭에는 잡초만 무성하고, 창고는 텅텅 비어 있는데, 화려한 무늬가 있는 옷을 입고 예리한 칼을 찼으며, 음식을 물리도록 먹고, 재물은 남아돈다. 이것을 도과(도정의 우두머리)라고 하니, 도가 아니로다!

이 때문에 성인은 반듯하지만 가르지 않고, 예리하지만 상처 주지 않으며, 올곧지만 함부로 하지 않고, 빛나지만 번쩍거리지는 않는다.

특히 "미迷"의 의미에 대해 한비는 이런 주석을 달았다. "무릇 가고자 하는 길을 잃고 헛되이 행동하는 것, 이를 가리켜 갈피를 못 잡는다고 한다. 사람이 갈피를 못 잡으면 이르고자 하는 곳에 이를 수 없다. 지금 사람들은 이르고자 하는 곳에 이를 수 없기 때문에 갈피를 못 잡는다고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정신을 사용하는 마음가짐은 조급하다. 조급하면 소모가 많아지는데, 소모가 많아지는 것을 '사치'라고 한다. 성인이 정신을 사용하는 것은 고요하다. 고요하면 소모가 적은데, 소모가 적은 것을 '아낀다'고 한다. 아끼는 방법은 도리로부터 나온다. 무릇 아낄 수 있으면 도를 따르는 것이며 이에 복종하는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걱정학 환난에 빠지더라도 물러설 줄 모르고 도리에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 성인은 비록 재앙과 환난의 형상을 보지는 못하지만 마음을 비우고 도리에 복종하기 때문에 이것을 '조복'이라고 하낟."

노자에 따르면 세상의 어려운 일들은 많은 것이 이루어지지 않아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치게 많은 것을 하지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작은 생선을 찌는 데 자주 뒤집으면 그 윤기를 잃게 될 것이며, 큰 나라를 다스리면서 자주 법을 바꾸면 백성이 고통스러워할 것이다. 이 때문에 도를 터득한 군주는 고요함을 귀중하게 여기고 법을 자주 바꾸지 않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마치 작은 생선을 찌듯이 한다"고 했다. 

생기지 않았을 때 작위하고, 어지러워지지 않았을 때 다스려야 한다. (중략) 천 리 가는 길도 발아래에서 시작한다. (중략)
집착하는 일이 없으므로 잃어버리지 않는다.

나를 알아주는 이가 드물다는 것은 내가 귀한 것이니,
이 때문에 성인은 베옷을 걸치고도 옥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스스로를 알지만 스스로를 드러내지 않고, 스스로를 아끼지만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저것 (자현自現과  자귀貴)을 버리고 이것(자지知와  자애自愛)을 취하는 것이다. 

하늘의 도는 다투지 않으면서도 잘 이기고,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잘 대답하며, 부르지 않아도 저절로 오게 되고, 느긋하면서도 잘 도모한다.

때가 되면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니 여유롭게 떄를 기다려야 한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만물을 적시듯, 한 방울의 빗방울이 결국 강으로 바다로 닿듯이 말이다.

하늘의 도는 남는 것을 덜어내어 부족한 것을 보태주나, 사람의 도는 그렇지 않으니, 부족한 것을 덜어내어 남음이 있는 편을 봉양해준다.



- 노자의 사상은 단순한듯 하면서도 난해하고, 직관적인 듯하면서도 여러 해석이 가능하게 느껴진다. 그의 세상을 보는 눈은 예리하기가 그지 없으며, 그가 설파한 '도', 또한 가슴 속에서 깊이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위'를 강조한 그의 사상을 현실적으로 얼마나 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지는 의문으로 남는다. 그의 사상의 고귀함이 하늘과 같고, 유려함이 물과 같게 느껴지며, 순수함이 대지와 같아서, 그의 사상을 따라 산다면 세속에서 신선과도 같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매력적이고, 오묘한 만큼 그의 사상을 따르기가 쉽지는 않은 듯 보인다. 공자는 '예'를 통해 '인'에 다다르는 행동지침을 제시했다면, 노자는 오직 높은 정신을 지닌 몇 명만이 다다를 수 있는 직관에 의한 깨달음과 그 실행의 경지를 제시하고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 
단 5000자의 내용으로 현세까지 그 사상을 전달하는 힘이, 그가 말한 무위의 사상으로 죽더라도 천수 이상를 누리고 있음을 그의 행적으로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는 듯하다.


2013년 10월 4일 금요일

릴케의 '말테의 수기' 중

사람들은 살기 위해서 여기로 몰려드는데,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여기서 죽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중략) 그 여자는 햇볕으로 따뜻해진 높다란 담벼락을 따라 힘들게 걸음을 옮기면서 벽이 아직도 거기에 있는지 확인하는 듯이 때때로 손을 대어보곤 했다. 그래, 벽은 아직도 거기 있었다.

좁은 거리의 곳곳에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요오드포름 냄새, 감자튀김의 기름 냄새, 불안의 냄새였다. (중략)
아이는 입을 벌린 채 자고 있었ㄷ는데, 숨쉬면서 요오드포름과 감자튀김과 불안을 들이마시고 있었다. 사실 그랬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살아 있다는 사실이며, 그것만이 정말 중요한 일이었다.

누군가가 외치고 있다. 사람들은 달리며, 서로 앞지른다. 개가 짖는다. 이 얼마나 마음 놓이게 해주는 일인가. 개 한 마리가.

예를 들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 얼굴들이 있는가를 한번도 의식한 적이 없었다. 엄청나게 많은 인간들이 살고 있지만, 얼굴은 그것보다 훨씬 더 많다. 누구나가 여러 가지의 얼굴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사람도 있지만, 물론 그 얼굴은 앍고 더러워지고 주름이 잡혀, 여행 중에 끼고 있던 장갑처럼 늘어나 버린다. (중략) 그들은 그것을 보관해 준다. 자식들이 그 얼굴들을 쓰고 다니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기르는 개가 그 얼굴을 쓰고 밖으로 나가는 경우도 있을 거다. 어째서 안 된단 말인가? 얼굴은 얼굴인데.

완전히 자기 몸속으로 폭삭 가라앉은 듯한 그 여자는 두 손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중략)
거리는 너무나도 텅 비어 있었다. 그 공허가 지루해하며 내 발밑에서 걸음을 빼앗아다가 나막신을 신은 듯이 이리저리 딸가닥거리며 돌아다녔다. 여자가 그 소리에 놀라 너무 갑작스럽게 빨리 몸을 일으켰기 때문에 얼굴이 두 손 안에 남아 있는 상태였다. 나는 그 손 안에 비어 있는 얼굴의 틀을 보았다. 시선이 손에 머물러 있는데 손에서 떨어져 나와 있는 것을 보지 않기 위해서는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노력이 필요했다. 얼굴을 안쪽에서 보는 일도 소름 끼쳤지만, 얼굴 없는 적나라한 상처받은 머리통을 보는 일은 훨씬 더 무서웠다.

오늘날 잘 마무리된 죽음을 위해 돈을 치를 사람이 누가 있을까? 아무도 없다. (중략) 자기만의 죽음을 가지려는 소원은 갈수록 보기 드물어진다. 좀더 지나면 자기 자신의 죽음이 자신의 삶처럼 흔치 않을 것이다. 맙소사, 여기에는 없는게 없다. 그저 와서 생을 발견하면 그만이다. 그저 그것을 기성복처럼 입기만 하면 된다. 자기 뜻으로 가거나 가도록 강요를 받는다. 자, 그러니 노력할 필요가 없다. "선생님, 여기 당신의 죽음이 있습니다." 사람은 닥치는 대로 죽는다. 자기가 앓는 병에 딸린 죽음을 죽는다.

시를 쓰기 위해서는 때가 오기까지 기다려야 하고 한평생, 되도록이면 오랫동안, 의미(意味)와 감미(甘味)를 모아야 한다. 그러면 아주 마지막에 열 줄의 성공한 시행을 쓸 수 있을 거다.

아, 책 읽는 사람들 속에 있는 게 너무도 좋다. 왜 사람들은 늘 책 읽을 때와 같지 않을까? (중략)  많은 사람들은 일에 쫓겨 그렇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을 곧 버림받은 부류로 생각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저들은 거지일 뿐 아니라 버림받은 자들이라는 것도 안다. 아니 그들은 사실상 거지가 아니다. 구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은 쓰레기다, 자기의 운명을 탕진해 버린 인간들의 껍질이다. 운명이 뱉어낸 침처럼 축축하게 벽에, 가로등에, 광고탑에 달라붙어 있거나 아니면 뒷골목에서 천천히 흘러내려가는 하수처럼 칙칙하고 더러운 흔적을 남기고 간다.
(중략) 그러고는 나는 책들 사이에 끼여서 마치 내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그대들을 떠나서 여기 앉아 한 시인의 작품을 읽고 있다.

그리고 이 세상 어딘가에서 아무도 돌보는 사람 없이 문이 굳게 닫혀 있는 많은 농가들 중, 어느 한 곳에서 살 수가 있다면, 나도 한 사람의 시인이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다. 방 한 개만으로도 족했을 텐데(햇볕 밝은 지붕 밑 방이면 더욱 좋다). 거기서 나는 오래된 내 물건들, 가족의 초상화들, 무엇보다도 책과 함께 살았을 텐데. 한 개의 안락의자와 꽃과 개들, 그리고 돌이 많은 길을 갈 때 필요한 튼튼한 지팡이가 있었으면 좋았을 테고, 그 밖에는 아무것도 더 필요 없었을 텐데. 다만 노란 상앗빛 가죽으로 묶인, 오래된 꽃무뉘가 그려진 책 한 권. 거기에다 글을 써넣었을 텐데. 많은 것을 써넣었을 텐데. 왜냐하면 나는 많은 생각과 수많은 사람에 대한 추억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는 땀에 몹시 젖었고, 마치 피 속에 엄청나게 큰 뭔가가 밀치고 돌아다니며 가는 곳마다 혈관을 넓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마비시키는 듯한 통증이 내 몸속에서 돌고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공기가 벌써 다 바닥나고 내쉰 공기만을 자꾸 되들이마셔 폐가 정지된 것처럼 느꼈다.

모든 것이 말로써는 표현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할 수 없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그런데도 불안이 커져갔고, 그에 맞서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가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그저 산만하게 보이려고 무진장 애쓰는 가운데, 그의 몸속에서는 끔찍한 경련이 쌓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 남자의 경련이 자라고 또 자라고 있음을 느끼면서 내 마음속에서도 그에 따르는 불안이 자리 잡았다. 심한 경련이 그 남자의 내부에서 몸을 흔들기 시작할 때, 그가 죽어라 지팡이를 움켜잡는 것을 보았다. 양손의 모양이 너무나도 가차없고 엄격해서 크고 굳셀 수밖에 없을 그의 의지에 내 모든 희망을 걸었다. 그러나 이럴 때 의지가 무엇이겠는가. 힘이 다하여 그가 더 나아가지 못하는 순간이 분명히 올 것이다. 나, 몹시 가슴을 두근거리며 그 뒤를 따라갔던 나, 나는 남아 있는 힘을 돈처럼 모아 그의 손을 보며 부탁했다. 필요하다면 나의 작은 의지나마 가져가 주기를.
그가 그것을 받아들였다고 믿는다.
(중략) 그런데 그 남자의 걸음걸이가 약간 불안정해졌다. 그는 두 걸음 앞으로 걷다가 이제 멈추었다. 선 채로 있었다. 왼손이 슬그머니 지팡이를 놓더니 그것을 천천히 쳐들고 공중에서 덜덜 떠는 것을 나는 보았다. 그 남자는 모자를 약간 뒤로 젖히고 이마를 훔쳤다. 머리를 조금 돌린 후 그의 시선은 흔들리면서 멍하지 하늘과 건물들과 물을 건너가다가 그만 급강하했다. 지팡이는 손에서 떨어져 나가고, 그는 하늘을 날려는 듯 두 손을 펼쳤다. 자연의 힘처럼 그에게서 무엇인가 터져 나와, 그의 몸을 앞으로 구부리게 했다가 뒤로 젖히게 했다가, 목을 끄덕이다가 숙이게 했다. 그는 춤을 추려는 듯이 경련을 일으키며 무리 속으로 내동댕쳐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위에 몰려들었기 때문에 더는 그를 보지 못했다.
마음이 텅 비어 있는데, 어딘가로 간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한 장의 빈 종이 같은 기분으로 건물들을 죽 따라 다시 대로를 걸어 올라갔다.

이 끔찍한 것 속에서, 겉보기에 혐오스럽게만 보이는 것 속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게 통용되는 존재성을 보는 게 보들레르에게 주어진 과제였어. 선택이나 거부는 없지.

공기의 성분 하나하나 속에 들어 있는 무서운 것의 존재. 너는 투명한 공기와 함께 그것을 들이마시게 되지. 그러면 네 속에서 그것이 비처럼 내려서는 딱딱해지고 몸의 기관들 사이에서 날카로운 기하학적 도형을 형성한다. (중략) 거기에서 두려움이 높이 솟아올라 너보다 높아지고 네가 마지막 피난처인 듯이 도망쳐 간 너의 호흡보다도 더 높아진다. 아, 그럼 어디로 가나, 어디로 가야 하나? 너의 심장은 너를 네 속에서 몰아내고는 네 뒤를 쫓고, 그러면 너는 거의 너의 밖에 나와 있어 너의 속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게 된다. 너는 사람들이 풍뎅이 같은 곤충을 짓밟을 때 내장이 튀어나오듯 그렇게 네 속에서 튀어나오게 되니, 네 표피가 지닌 약간의 단단함과 적응력은 아무 의미가 없게 된다.

나는 울었는데 가면으로 가려져 눈물이 밖으로 흘러나오지를 않았다. 눈물은 안에서 내 얼굴 위로 흘러내리다가 곧 마르고, 다시 흘러내리다가 말랐다.

때때로 나는 하늘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죽음이 어떤 것인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우리의 가장 소중한 것을 그보다도 먼저 처리해야 할 다른 일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이유로 밀쳐두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바쁘게 몰두하고 있는 곳에서는 그 소중한 것이 안전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시간은 흘러가버렸고, 그리하여 우리는 하찮은 일들에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귀중한 것을 더 알지 못하게 되었으며 그 엄청나게 커다란 것에 놀라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생각할 수 없을까요?

그러나 그런 사람이 보이지는 않아도 어떻든 그에 대한 말이 들리기만 하면 그것은 귓속에서 자라난다. 말하자면 부화되어 개의 코로 들어오는 폐렴균처럼 우리의 뇌로 밀고 들어와 그 속에서 파괴해 가면서 커져가는 경우를 보았다.
이런 존재가 이웃 사람이다.

아, 너희들은 죽은 상태로 있었어야 했는데.


- 정말, 기가 막히게,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한 권의 책을 읽었다.
릴케의 눈으로 본 세상, 너무도 절박하고 안타까운, 가슴 후비는 아름다움을 간직한 가난한 생들. 그들 사이에서 보는, 그것을 보는 화자. 한걸음의 생도 어려운 절망에 다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의지를 말없이 돈처럼 모아서 건네주고 싶은 그 마음을 나는 안다. 그러나 그것을 볼 수 있을까? 도시의 번잡스러움 속에 가려진 비참한 인간의 마음들, 병원 담벼락 뒤에 감추어진 고통들, 비명들. 얼굴 속에 감춰진 눈물들. 그리고 그 냄새, 냄새들... 그 모든 것을 너무도 솔직하게 담아내는 릴케의 필치에 먹먹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같은 문장에 도도리표가 박힌 듯, 몇 번을 되돌아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