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1월 28일 수요일

지드의 '배덕자' 중

죽음의 날개가 스친 뒤에는, 중요하게 보이던 일도 이미 그렇지 않게 된다. 중요하게 보이지 않던 것, 또는 존재하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이 오히려 더 중요해진다. 우리의 머릿속에 쌓여있는 온갖 지식이 분칠처럼 벗겨져서, 곳곳에 숨겨져 있던 정체가 벌거숭이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때부터 내가 찾아내기로 마음먹은 '인간'인 것이다. 참다운 인간인 '옛 사람' (그리스도 이전의 사람을 말함-옮긴이 주)인 것이다. 복음서가 이미 필요로 하지 않는 책, 교사, 양친 등 모든 것이, 그리고 나 자신조차도 처음에는 말살하려고 했던 인간이 것이다. 그리고 그 인간은 쓸모없는 짐을 너무 많이 짊어진 까닭에 일찌감치 닳아 없어져서 발견하기 힘들 것으로 생각되었으나, 그런 만큼 더욱더 그 발견이 유익하고 또한 장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 순간 이후로 나는 훈련되고, 교육으로 겉칠을 했을 뿐인 저 제2차적인 존재를 경멸하게 되었다. 과중한 짐을 덜어버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지나가는 하루를 도중에서 잡아당겨서 한 시간, 한 시간을 다시 고쳐보고 싶어지고, 슬퍼서 울고 싶을 지경이야.

왜냐하면 사람들 속에 가면 나는 마치 죽은 자들의 세계에서 돌아온 사나이처럼 언제나 이방인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이때 비로소 나는 나 자신의 가치를 의식했다. 스스로를 남과 분리시켜놓고 있는 것, 구별짓고 있는 것, 이것이 중요한 것이었던 것이다. 나 이외에 아무도 말하지 않았고, 말할 수도 없었던 것, 그것이 바로 내가 말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이라고 하는 것은, 아아, 행동 옆에서는 그 얼마나 창백해지는 것일까? 실생활은 메날크의 사소한 행위라도 내 강의보다 훨씬 더 웅변적이 아니었을까?
아아! 그후 나는 옛날의 대철학자의 거의 모든 정신적인 교훈은, 말의 가르침인 동시에 말 이상으로 실천을 본보기로 해서 보여준 가르침이라는 것을 뚜렷이 이해했던 것이다!

선택하지 않으면 안 돼. 중요한 것은 자기가 원하는 바를 안다는 거야.

그렇게 사이좋게 지냈는데도 귀찮아지고, 서먹서먹하고, 관심 밖의 사랑으로 느껴지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그것은 내 일과 취미가 이미 작년의 그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아직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 그것이 내가 알고 싶은 것이었다.
인간이 여태까지 말한 것이 인간이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을까? 이제 그것을 되풀이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는 것일까? 이렇게 해서 교양이나 예의나 도덕에 의해 덮여지고, 감추어지고, 질식되어 있는 티없이 깨끗한 숱한 보물이 있다는 희미한 생각이 내 마음속에서 날이 갈수록 커져갔다.

이따금 내 진정한 생활은 아직도 시작되지 않은 것같이 느껴진단 말이야.

- 지드의 '지상의 양식'과 동시에 발표된 '배덕자'는 지상의 양식에서 보여주고 있는 지드의 철학이 소설의 형태로 나타나 두 작품간의 이해를 돕는다. 주인공은 병에 의해 죽음 목전까지 갔다가 다시 살아남으로서 기존의 삶에 대한 태도와는 다른 태도를 갖게 된다. 그의 표현대로 이전에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 중요하게 다가오고, 이전에 중요했던 것이 그렇지 않게 된다. 예를 들면, 주인공 미셀은 학문연구보다는 자연에 발을 딛고 일하는 것을 더 좋아하게 되고, 미래를 계산하지 않고 돈을 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신은 그에게 마땅히 요구되는 관념, 예의, 도덕 등에 의해 간섭받는다.
그에게 가장 큰 현실의 족쇄는 그가 위독했을 때 헌신적으로 간호해주었던 부인에게 있다. 그는 그녀를 사랑하지만, 그녀가 아프게 되었을 때 그녀는 그의 새롭게 찾은 삶에 무거운 의무로서 다가온다. 기혼자인 주인공의 소년들에 대한 아름다움에 대한 탐닉, 생명을 들이마시고 고양시키고자 하는 욕구, 자연에 발을 딛고 서서 하나됨을 외치고 싶은 마음들이 마치 현재에서는 용서받지 못할 인간으로 간주되어지는 것에 대해 지드는 물음표를 찍는다. 그가 머리말에 말한 것처럼  무엇이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단 하나뿐인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있어서의 물음을 현실의 의무와 책임에 속박된 자아에게 물어보라는 것이다.
아내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것과 같은 주인공은 평생 그 죄책감을 씻지 못하고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그가 기억할 것은 햇살과 바람, 흙투성이의 낚시, 구리빛 피부의 미소년들일 것이다.
현실은 벗어날 수 없다. 의무도 끊어버릴 수는 없다. 그러나, '자신'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리지 말아야 한다. 현실의 옆구리를 조금이라도 벌려 그 틈에 자신의 욕구를, 꿈을, 밀어넣을 수 있다면, 멋진 일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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