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26일 목요일

강신주의 '감정수업' 중

"부잣집 딸들이 대개 그렇듯이 관습적인 취향을 즐기는 것 말고는 다른 재능을 갖고 있지 못했다. 그녀가 아는 것이라고는 양장점이나 가구점에서 엄청난 돈을 쓰는 것뿐이었다."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중-

라캉(Jacques Lacan)의 말대로 인간은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는 존재다.

좋은 일이란 오래가는 법이 없구나. 차라리 이게 한낱 꿈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이 고기는 잡은 적도 없고, 지금 이 순간 침대에 신문지를 깔고 혼자 누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인간은 패배하도록 창조된 게 아니야." 그가 말했다. "인간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패배할 수는 없어."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중 -

진정 커다란 고독이 닥쳐오고 완벽한 정적에 휩싸이면,
몽상가의 마음에도 불꽃의 핵심에도 같은 평화가 존재한다.
그때 불꽃은 자신의 형태를 지키며 확고한 사상처럼
수직성의 운명을 향해 똑바로 내닫는다.
-가스통 바슐라르, '촛불의 미학'에서-

과거의 아픈 기억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염려! 어쨌든 두려움은 우리의 현재를 좀먹는 감정인 것은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아픈 기억은 우리를 과거로 봰고, 지나친 염려는 우리를 미래로 던져 버리기 때문이다. (중략) 가장 중요한 것은 가벼움을 확보하는 것이다.

샤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라고 말했던 적이 있다. 그러니까 타인은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자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슬픔이 내 연인이라고, 어머니가 사막과도 같은 자신의 삶 속에서 울부짖을 때부터 그녀가 항상 나에게 예고해 준 그 불행 속에 떨어지고 마는 내 연인이라고."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연인' 중-

나무가 커지면 커질수록 그림자도 그만큼 더 커지고 길어진다. 그림자의 검은빛을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동시에 그는 큰 나무의 웅장함도 포기하지 않으려고 한다.

아이들은 희망이 가진 불확실성보다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갖게 되는 기쁨에 더 주목하기 때문이다. (중략) 반면 어른들은 희망이 실현되었을 때의 기쁨보다는 그것이 지닌 불확실성에 더 신경을 쓴다. 여러 다양한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어른들에게 이런 불확실성은 여간 귀찮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어른들은 삶과 미래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기꺼이 희망을 현실이라는 제단에 바치고 만다.


- 크레마의 책장에 꽂혀있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읽을 일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크레마의 책장을 기웃대다 노란 표지와 스피노자의 철학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와 사게 되었다.
스피노자의 철학에 대해서 문외한인 나로서는 여러 감정을 각각의 챕터로 만들어 하나의 고전 문학과 비교해 서술해 놓은 것이 매우 새로운 시도로 여겨졌지만, 그만큼 하나의 문학작품을 하나의 감정과 비유하는 것이 무리가 있게 느껴지기도 했다. 각각의 문학작품이 담고 있는 의미와 무게를 합친다면 아마도 하나의 단어로 비유되기에는 너무도 무거울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스피노자의 감정에 대한 정의를 좀 더 깊이 파고 들어가 서술해 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각각의 감정에 대한 철학자의 어드바이스 또한 더 깊이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 인간의 48가지 감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이용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이고 심도있는 논의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바람이다.
그러나 서점 귀퉁이에서 외면받는 다양한 고전 문학에 새로운 빛을 비추어 준 것이 고맙고, 문학이나 철학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입문서로서는 적합한 책이라는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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