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2월 30일 월요일

생텍쥐베리의 '인간의 대지' 중

그렇게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지리학자도 모르는 세세한 것들을 망각 속에서, 상상할 수도 없이 먼 거리에서, 끄집어냈다. 왜냐하면 지리학자들의 흥미를 끄는 건 대도시에 물을 대는 에브로 강이지, 모트릴 서쪽 풀숲에 숨어 서른 포기 남짓한 꽃을 먹여 살리는 실개천 같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이 든 월급쟁이들의 하찮은 명상에 말이다.
(중략) 병이나 돈, 집안 걱정거리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런 속내 이야기는 그들이 갇혀 있는 우중충한 감옥의 벽을 보여 주었다. 그러다 갑자기 운명의 얼굴이 내 앞에 나타났다.
여기 있는 나의 동료, 늙은 사무원이여, 누구도 그대를 탈출시켜 주지 않았다. 그대는 이에 대해 일말의 책임도 없다. 그대는 저 흰개미들이 그렇게 하듯 광명으로 빠져나갈 모든 틈새를 시멘트로 애써 틀어막고 평화를 일구었다. 그대는 소시민적인 안전 속에서, 틀에 박힌 일과 속에서, 시골 생활의 숨 막히는 관례 속에서, 공처럼 굴러다니며 바람과 조수와 별을 막기 위해 그 보잘것없는 성벽을 쌓아 올렸다. 그대는 거창한 문제로는 조금도 고민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대는 그대의 크고 작은 인간사를 머릿속에서 지워버리려 고군분투했다. 그대는 결코 떠돌이별의 주민이 아니다. 그렇다, 그대는 툴루즈의 소시민이다. 아직 기회가 있었을 때조차 그 누구도 그대의 어깨를 붙들어 주지 않았다. 이제 그대를 빚어준 진흙은 말라 굳어 버렸다. 이제는 그 어떤 것도 그대의 마음속에 깃들었을지 모를 잠든 음악가나 시인, 혹은 천문학자도 깨울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제 더는 폭풍우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 이 마법같은 직업이 내게 하나의 세계를 열어보여주니까. 그 세계에서 2시간 후면 나는 검은 용과 맞설 것이고, 푸른 번개 갈기를 왕관처럼 쓴 산봉우리와 대결할 것이다. 밤이 우면 나는 폭풍우에서 해방되어 별들 속에서 나의 길을 찾아갈 것이다.

그때부터 우리는 우리가 별들 사이의 공간에서 길을 잃었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다가갈 수 없는 100개의 별들 사이에서 단 하나뿐인 진정한 별을, 우리의 별을, 우리에게 익숙한 풍경과 우리의 정다운 집과 우리의 애정을 간직하고 있는 그 별을 찾다가 길을 잃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에게는 최고 5,200미터의 상승비행을 할 수 있는 비행기가 맡겨졌다. 안데스산맥의 봉우리들을 7,000미터나 솟아 있었다. 그런데도 메르모즈는 통로를 찾기 위해 이륙했다. (중략) 메르모즈는 다른 이들을 위해 '시도'를 했다.
그렇게 여러 번 '시도'를 하던 어느날, 그는 끝내 안데스 산맥으리 포로가 되고 말았다.
(중략)
그다음 날, 메르모즈는 다시 날아올랐다.
(중략)  그리고 그가 돌아오는 것은 언제나 다시 출발하기 위함이었다.

한 직업의 위대함이란 어쩌면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이어주는 데 있을지 모른다. 진정한 의미의 부란 하나뿐이고, 그것은 인간관계라는 부이니까.

"이틀째부터 내가 한 가장 큰일은 생각이 떠오르는 걸 막는 일이었다네. 알겠나? 나는 너무 고통스러웠고 내 상황은 너무 절망적이었지. 걸을 용기를 얻기 위해서는 그런 상황 자체를 생각하지 말아야 했어. (중략)"
일단 일어서자 자네는 이틀 밤 사흘 낮을 내리 걸었네.

내가 보기에 우리의 급속한 기술 발전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목적과 수단을 혼동하는 것 같아. (중략) 하지만 기계는 목적이 아니야. 비행기는 목적이 아니라네. (중략)
모든 진보가 우리가 겨우 체득한 습관 밖으로 우리를 더 멀리 쫓아내 버렸네. (중략)
우리 모두는 아직 새 장난감에 감탄하는 젊은 야만인들에 지나지 않아. (중략) 저 비행기는 보다 높이 날고 보다 빨리 날아가지만, 우리는 왜 우리가 비행기를 날게 하는지를 잊었네. 지금은 경주가 그것의 목적보다 중시되고 있어. 언제나 마찬가지야. 제국을 건설하는 식민지군에게 삶의 의미는 정복하는 데 있지. 군인은 소작농을 무시해. 그런데 정복의 목적은 그 소작농이 정착하도록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식으로 진보의 열광 속에서 우리는 많은 이들을 철도 부설, 공장 건설, 석유 시추 작업에 종사하도록 만들었네. 우리는 이러한 건조물을 세우는 이유가 인간에게 봉사하기 위한 것임을 망각해 버렸네. (중략) 아직 제 모습을 갖추지 못한 이 새집을, 살아 움직이는 것으로 만들어야 하네. 전자의 경우 진리란 건설하는 데 있지만, 후자의 경우 진리란 거주하는 데 있지.

그러나 나는 고독을 알았다. 사막에서의 3년은 내게 고독의 맛을 톡톡히 가르쳐주었다. 거기서는 광물의 풍경 속에서 마모되는 젊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온 세상이 자신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늙어가는 것 같았다. (중략)
보통, 사람들은 시간의 흐름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을 일시적인 평화 속에서 살아간다. 그러나 우리는 일단 기항지에 도착하기만 하면, 끊임없이 불어오는 무역풍이 우리를 짓누를 때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낀다. 우리는 어둠을 가르는 차축의 소음으로 가득한 급행열차를 탄 여행객 같았다. 창밖에서 휙휙 지나가는 불빛 몇 줌을 보고 들판이, 자기 마을이, 황홀한 풍경이 풀러가리라는 것을 짐작해 보는 여행객, 여행중이기 때문에 그 어떤 것도 붙잡아 둘 수 없는 그런 여행객말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막을 사랑했다.

사막이 일견 공허와 침묵일 뿐이라고 느껴지는 것은 하루살이 애인에게는 자신을 내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내 작은 여우야, 나는 지금 절망적이란다. 그런데 이상하기도 하지. 절망적인데도 네가 어떤 성격일지 관심이 생기니 말이야......"
나는 거기서 몽상에 잠긴 채 가만히 있다. 사람이란 모든 일에 적응하기 마련인 것 같다. 30년 후면 죽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고 해서 한 인간의 기쁨이 엉망이 되지는 않는다. 30년이건 사흘이건...... 그것은 단지 관점의 문제다.
하지만 어떤 모습들은 잊어버려야 한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사형수가 가진 담배 한 개비와 럼주 한 잔의 의미를 이해한다. (중략) 그가 관점을 바꾸어 그 마지막 순간을 인간의 일생으로 삼은 것을 사람들은 모르는 것이다.

물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은 의심도 해보지 못했다.

나는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나는 모든 것을 걸었고, 모든 것을 잃었다. 이것이 내 직업의 생리다.

왜 우리는 타인을 미워하는가? 우리는 서로 굳게 결속되어 있다. 같은 별에 사는 이웃이고 한 배를 탄 선원이다. 새로운 통합을 이루기 위해 문명이 서로 대립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문명이 서로를 잡아먹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할을 자각할 때, 아무리 하찮은 역할일지라도 그 역할을 깨달을 때, 그때에만 우리는 행복할 수 있다. 그때에만 우리는 평화롭게 살고 평화롭게 죽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죽음에도 의미를 주니까.

배고플 때 느끼는 것, 빗발치는 사격 속에서도 스페인 군인들이 식물학 강의를 듣도록 내몰고, 메르모를 남대서양 쪽으로 내몰고, 또 누군가는 시를 쓰도록 내모는 그 배고픔에서 우리가 느끼는 것. 그것은 바로 천지창조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우주에 대해 자각해야 한다는 점을 느낀다. 우리는 어둠 속으로 다리를 놓아야 한다. 우리 중 이 점을 모르는 자들은 오직 이기적인 무관심을 지혜라고 여기는 자들뿐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그들의 지혜가 거짓임을 보여 준다! 동료들이여, 나의 동료들이여, 우리는 언제 행복하다고 느꼈던가? 나는 이에 대해 말해 줄 증인으로 자네들을 세우고자 한다.

그렇게 첫 우편기를 몰게 된 새벽에, 우리를 배웅해 주던 그 늙은 사무원들이. 그들도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굶주렸다는 점을 조금도 알지 못한다.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그저 잠든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노쇠한 동물이라도 여전히 매력을 지니는 법이다. 그런데 왜 이 아름다운 인간 찰흙은 흉하게 일그러지고 만 것일까?

그래서 나는 내 열차 칸으로 돌아왔다.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들은 자신들의 운명에 대해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니 여기서 나를 괴롭히는 것은 동정심이 아니다. 끊임없이 재발하는 상처를 동정하는 일은 전혀 문제가 안된다. 상처를 입었으면서도 저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 여기서 상처를 입은 이, 피해를 받은 이는 개인이 아니라 인류와 같은 차원에 있는 그 무엇이다. 나는 연민을 믿지 않는다. (중략) 나를 괴롭게 하는 건 사람들이 나태에 안주하듯 이러한 비참함에 결국 안주할 거란 사실이다. (중략) 그것은 바로 저 인간들 한 명 한 명 안에 있는, 죽어가는 모차르트이다.

오직 '정신'만이 진흙에 숨결을 불어넣어 '인간'을 창조할 수 있다.


- 생텍쥐베리의 산문집, '인간의 대지' 솔직하고 담백한 문장들로 가슴을 울린다. 그의 비행에 대한 열정과 맞물린 삶에 대한 열정, 시대적 비극과 그 안의 사람들에 대한 슬픔, 일상성에 매몰되어 가는 헐벗은 인간에 대한 연민어린 멸시, 용기와 희생을 각오한 사람들에 대한 동경과 감사 등이 우주를 품은 존재로서의 인간으로서의 자각과 행동을 요구하는 그의 목소리로 들려온다.
단지 글만으로서가 아닌 자신의 삶으로서 이상을 행동으로 보여주었던 생텍쥐베리. 그의 섬세한 감성과 강한 정신이 시대를 초월해 읽는 이에게 가슴시린 설렘과 용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사하라 사막에서의 불시착이라는 생사의 기로에 섰던 그가 써낸 글들이 개인에게 줄 수 있는 의미와 희망은 시간이 흐르고 흘러도 무한히 그 깊이를 더할 것 같다. 사막을 보고 별을 보고 황혼을 보면 언제나 생각날 작가, 그가 글을 쓰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무엇을 잃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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