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2월 21일 금요일

말라르메(Mallarme)의 시 중 -민음사 '목신의 오후'에서 발췌-

<창>

슬픈 병원에 비쳐서,
텅빈 벽, 권태로운 대십자가를 향해
일상의 백색 휘장처럼 피어오르는
역한 내음의  향연에 지쳐서,
빈사의 환자는 늙은 등을 추켜 세우고

몸을 이끌고 다가가
메마른 얼굴의 흰 수염과 뼈를,
곱고 맑은 광선이 잡아당기는 창에 댄다.
썩은 환부를 덥히려는 것이 아니라
돌 위에 내리는 햇빛을 보려 함이다.

젊었을 적 그의 보물, 그 옛날 동정의
피부를 빨아들이려 찾아가듯,
열에 뜬 입, 푸른 하늘에 굶주린 입으로
오래 오래 쓰디쓰게 입맞춤하며
황금빛으로 데운 유리창을 더럽힌다.

꿈에 취하여, 이제 그는 살고 있다.
죽음의 유약의 몸서리침도, 탕약도,
강요당한 침대도, 기침도 모두 잊는다.
저녁이 기와 지붕들 사이에 피를 흘릴 때,
빛이 넘치는 지평선에 눈을 보내고,

추억이 가득 차 오히려 무심하게
갈래 갈래 찢기는 야성의 번갯불을 얼러 잠재우며,
보는가, 백조같이 아름다운 황금 노예선들이
향기 젖은 분홍빛 강 위에 잠자는 것을.

이처럼, 행복의 의자에 깊이 파묻힌
모진 마음의 인간이 역겨워,
오직 살아 있는 것은 식욕,
젖 먹이는 아내에게 가져다 주려고 오물을 찾아 안간힘을 쓰는 인간이 역겨워.

나는 도망친다, 나는 모든 창에 매달려 삶에게 등을 돌리고 싶다, 하여,
순결한 <영원>의 아침이 금빛으로 물들이는
구원의 아침 이슬로 축복받고 씻겨서
그 창 유리 속에 내 얼굴을 비치면

나는 천사가 된다! 그리고 나는 죽어
--- 창 유리는 예술이어라, 신비여라 ---
<아름다움>이 꽃피는 태고적 하늘에
꿈의 왕관을 쓰고
나는 새로 태어나고 싶다!

그러나 오호라! 속세가 주인이라,
악몽은 때때로 이 확실한 피난처까지
찾아와 내 속을 뒤집고
어리석음의 더러운 구토가
푸른 하늘 앞에서도 코를 막게 한다.

오, 쓰디쓴 맛을 나는 나여,
모욕받은 괴수처럼 수정을 부시고 깃털 없는 내 두 날개로 도망칠 방법이 있는가
--- 영원 속에서 떨어지는 한이 있어도?


<바다의 미풍>

오! 육체는 슬퍼라, 그리고 나는 모든 책을 다 읽었노라.
떠나 버리자, 저 멀리 떠나 버리자.
새들은 낯선 거품과 하늘에 벌써 취하였다.
눈매에 비친 해묵은 정원도 그 무엇도
바닷물에 적신 내 마음을 잡아 두지 못하리,
오, 밤이여! 잡아 두지 못하리,
흰빛이 지켜 주는 백지, 그 위에 쏟아지는
황폐한 밝음도,
어린아이 젖 먹이는 젊은 아내도.
나는 떠나리! 선부여, 그대 돛를 흔들어 세우고 닻을 올려
이국의 자연으로 배를 띄워라.
잔혹한 희망에 시달린 어는 권태는
아직도 손수건의 그 거창한 작별을 믿고 있는지.
그런데, 돛들이 이제 폭풍을 부르니
우리는 어쩌면 바람에 밀려 길 잃고
돛도 없이 돛도 없이, 풍요한 섬도 없이 난파하는가
그러나, 오 나의 가슴아, 이제 뱃사람들의 노랫소리를 들어라.


<백조>

순수하고, 싱싱하고 아름다운 오늘은
취한 날개를 쳐서, 떠나 버리지 못한
비상의 투명한 빙하가
서릿발 아래로 위협하듯 찾아드는
이 모진 잊혀진 호수를 찢어 줄까!

흘러 간 시절의 백조는 이제 기억한다.
모습은 찬란하나, 불모의 겨울 근심이
서슬 푸르게 번쩍거리도록
찾아가 살아야 할 악사를 노래하지 못한 죄로, 헤어나려고 애쓰나 희망이 없는 저의 신세를.

벗어나고 싶은 공간이 저에게 내리는
이 백색의 죽음 같은 고뇌를,
새는 저의 목을 다 늘여 빼고 뒤흔든다.
그러나 저의 날개깃이 매여 있는
이 땅의 혐오를 어이 뒤흔들랴.

저의 순수한 빛이 이곳에 지정해 준 유령의 모습,
무용한 유형 속에서, 백조의 신세로 하여 얻어 입은 차디찬 모멸의 꿈에
가만히 멈추어 몸을 맡긴다.



- 비참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이상과 생명에 대한 강렬한 열망이 유려한 문장에 비수를 꽂듯 깃들어 있는 말라르메의 시를 대하면서, 원어로 읽을 수 없다는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현실에 매여 있는 이상을 추구하는 정신은 항상 떠남과 비상을 갈망하나 벗어날 수 없다. <창>의 빈사의 환자가 갈망하는 아름다움과 비상, <바다의 미풍>에 드러난 떠남에 대한 열망, <백조>에 드러난 헤어나려고 애쓰는 날개짓에 매여 있는 그 몸부림에, 말라르메가 원했던 그 이상에 대한 갈구가 문장의 비참한 아름다움 속에서 울부짖는 것 같다. 위대한 시인의 글은 어떤 세월을 지나 읽히던 간에, 잠잠했던 가슴을 뒤흔들어 영혼에 소름을 돋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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