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9일 수요일

블라드미르 나보코프의 '절망' 중

손이 떨린다. 고함치고 싶다. 아니면 뭐라도 박살 내고 싶다. 바닥에 내동댕이 치고 싶다...... 이런 기분으로는 이야기를 차분히 펼쳐나갈 수 없다. 심장을 긁어댄다. 끔찍한 느낌이다. 진정해야 한다.

내면을 긁는 느낌이, 참을 수 없이 가려운 느낌이 다시 자라났다. 지독한 의지박약. 끔찍한 공허.

때때로 나를 휘감는 까닭 모를 우수는 내가 정신병동에서 삶을 끝낼 징조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나는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데, 스스로의 모델이 되는 데 몹시 익숙해져버렸다. 바로 그 까닭에 내 문체는 꾸밈없는 자연스러움의 은총을 잃어버렸다.

거울, 거울,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거울, 거울, 거울. 실컷 지껄여들 보라지. 난 두렵지 않다. 거울.

바다는 영혼의 동요.

작가는 끝내지 않은 초고는 공개하지 않는 법이다.

오히려 당신 얼굴에는 뭔가 이상한 게 있어요. 뭐랄까, 당신 얼굴선은 그리는 족족 제 연필 밑에서 미끄러집니다. 한번 미끄러지면 없어져 버리네요.

한길에서는 우편 배달부가 모자를 움켜쥐고 뒷걸음질 친다. 나는 힘겹다......

나는 시를 지었고, 아는 사람들의 명예를 돌이킬 수 없이, 그리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손상시키는 긴 이야기들을 남몰래 지었다.

나는 끝없는 긴 복도에 서 있는 것만 같다. 바닥에 자리한 문. 문을 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지만 엄두를 못 낸다. 마침내 결단을 내린다. 다가가서 문을 열어젖힌다. 그와 동시에 신음하며 잠에서 깨어난다. 문 뒤에서 상상할 수 없이 끔찍한 무언가가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바로 완전히 텅 빈, 백색 도료를 새로 칠한 벌거숭이 방. 더는 아무것도 없다.

자네가 내 걸 훔치면 아마 난 으쓱한 기분마저 들 거야. 도둑질이야말로 물건에 보내는 최고의 찬사란 말이지.

신의 부재를 증명하는 일은 간단하다. 예를 들어, 진지하고 전지전능한 어떤 불멸의 존재가 인체모형을 가지고 노는 짓 따위의 무의미한 일에 시간을 쏟는다는 사실을 수긍하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다. (중략) 내가 신에 관한 이야기는 낯설고 끔찍하다. 나는 그게 전혀 필요없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다면, 내 존재의 독재자가 되지 못한다면, 그 어떤 노리도, 그 어떤 황홀경도 어처구니없이 어리석은 내 처지에 대한 생각을 거두게 하지 못한다. 신의 노예라는 처비 말이다. (중략) 그러나 불멸이라는 고문만은, 이 차가운 하얀 강아지들만은 거절하겠다. 날 가게 놔두라. 조금의 애정 표시도 참지 않을 것임을 너희에게 경고하는 바이다. (중략) 아니, 이방인에게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가는 문을 닫아라.

문학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다. 이제 계속하자.

그러니 예술적 허구가 삶의 진실보다 사실적이다.

- 완벽한 언어 유희. 나는 이보다 더 언어를 잘 구사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그는 글의 중간 중간 자신의 필명을 뜻하는 글자를 넣거나, 철자를 뒤집어 이중의 의미를 가지도 한다. 원문으로 읽을 수 없는 게 아쉽다.) 그의 글은 새롭고, 충격적이다. 마치 아름다운 모델이 화려한 옷을 걸치고 런웨이를 걸어나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그 무대는 독자와 평등하지 않다. 작가는 독자보다 훨씬 높은 무대를 설치해 놓고 내려다 보고 있다. 그의 태도는 세련되었으나 냉소적이다. 작가는 마치 비웃음을 머금고 독자를 바라보는 듯하다. 그럼에도 그는 독자의 관심을, 독자의 박수갈채를 받고 싶어한다. 마치 소설 속의 주인공인 게르만이 그러하듯이.
게르만 이외의 인물들은 모두 둔한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려진다. 게르만 만이 모든 것을 명확하게 꿰뚫어보고, 누구든지 속여넘길 수 있는 두뇌를 가진 것처럼 묘사되지만, 결국 현실에서 패한 것은 게르만이다. 그래도 그는 개의하지 않는다. 그의 모습에 아마도 작가의 이중적인 모습이 어느정도 투영된 것이라 생각된다.
게르만은 자신과 똑같이 닮은 부랑자를 발견하고, 살인 및 사기 계획을 세운다. 플롯은 극히 단순하다. 그러나, 소설의 내용은 극히 복잡한 미로이다. 아무리 천천히 걸어나오려 해도 길을 잃은 듯한 당황스러움을 느낀다. 그 당황스러움을 작가가 마치 보는 듯해 낯 뜨겁다. 결과적으로 게르만이 살해해 생명보험을 타려고 했던 그 부랑자는 게르만과 전혀 닮지 않았다. 자신만 그렇게 느낀 것이다. 작가가 무엇을 의도했건 여기서 나는 삶에 대한 한 인간의 '착시'를 본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는 대로 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작가의 우월한 명석함도 작가의 눈에서만 그렇게 보일 수도 있는 것이다. 작가는 독자를 비웃으며, 또한 그 비웃음이 자신을 향한다. 그렇다. 그만 그렇게 느낀 것이다. 세상은 동조하지 않는다.
블라드미르 나보코프는 러시아 태생이지만, 독일, 프랑스, 미국, 스위스 등으로 이주했다. 그가 코넬대학에서 10년동안 교수 생활을 했다는 것을 알고 놀라웠다. 이 이타카에 10년동안 그가 살았었다니. 그의 유명한 작품, '롤리타'는 아마도 여기서 쓰여졌으리라. 존경하는 작가가 살았던 곳에서 산다는 것. 멋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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