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 23일 수요일

보들레르의 '악의 꽃' 중

-'독자에게' 중-
어리석음, 과오, 죄악과 인색에
정신은 얽매이고 몸은 듥볶이니,
우리는 친숙한 뉘우침만 키운다.
거지들이 몸에 이를 기르듯.

-'알바트로스' 중-
<시인>도 이 구름의 왕자를 닮아,
폭풍 속을 넘나들고 사수를 비웃건만,
땅 위, 야유 속에 내물리니,
그 거창한 날개도 걷는 데 방해가 될 뿐.

-'아름다움에 바치는 찬가' 중-
<악마>로부터 왔건 <하느님>에게서 왔건 무슨 상관이랴? <천사>이건 <시레네스>이건, 무슨 상관이랴? - 빌로드 같은 눈을 가진 요정이여,
운율이여, 향기여, 빛이여, 오 내 유일한 여왕이여! -
세계를 덜 추악하게 하고, 시간의 무게를 덜어만 준다면!

-'시체' 중-
그때엔, 오 나의 미녀여, 말하오.
당신을 핥으며 파먹을 구더기에게,
썩어문드러져도 내 사랑의 형태와 거룩한 본질을
내가 간작히고 있었다고!

-'심연에서 외친다' 중-
얼어붙은 태양의 차가운 냉혹함.
옛날 <혼돈>의 세계 같은 끝없는 이 어둠,
아, 이보다 더한 공포는 없소.

미련한 잠에 빠질 수 있는
천한 짐승의 팔자가 나는 부럽소.

-'환영, I.어둠' 중-
<운명>이 이미 나를 유배 보낸
헤아릴 수 없는 슬픔의 굴 속;
(중략)
거기서 나는 음산한 식욕 가진 요리사,
내가 내 심장을 끓여 먹는다.

-'환영, IV.초상화' 중-
그 중 무엇이 남아 있는가? 오 두렵다, 내 넋이여!
남은 건 오직 퇴색한 삼색의 소묘 하나뿐,

그것도 나처럼 고독 속에 스러져가고,
몹쓸 늙은이 <시간>은
날마다 그 거친 날개로 문지른다......

<삶>과 <예술>의 검은 말살자여,
너는 내 기억 속에서 절대로 죽이지 못하리라.

-'독' 중-
아편은 끝없는 것을 더욱 넓히고,
무한을 더욱 늘이며,
시간을 키우고 쾌락을 더욱 파고들어,
우울하고 서글픈 쾌락으로
내 넋을 채운다, 넘치도록 가득.

-'돌이킬 수 없는 일' 중-
당신은 생각나게 한다, 저 따스하고 안개 낀 하얀 날들을,
홀린 마음을 눈물로 녹이는 날들을,
가슴을 쥐어짜는 알 수 없는 아픔에 흔들려
너무 곤두선 신경이 잠자는 정신을 비웃을 때에.

-'흐린 하늘' 중-
저 오래된 지겨운 <회한>의 숨통을 끊을 수 있을까?
그것은 살아 움직이고 꿈틀대며
우리를 먹으며 살아간다, 송장 파먹는 구더기처럼,

-'가을의 노래' 중-
머지않아 우리는 차가운 어둠 속에 잠기리;
안녕, 너무 짧았던 우리 여름의 빛이여!
내겐 벌써 들린다, 음산한 소리 울리며
안마당 돌바닥 위에 떨어지는 장작 소리.

분노, 미움, 떨림과 두려움, 그리고 강요된 고역,
이 모든 겨울이 이제 내 존재 속에 들어오면,
내 가슴은 지옥 같은 극지의 태양처럼
얼어붙은 붉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으리.

-'슬프고 방황하여' 중-
말해봐요, 아가트여, 그대 마음 때때로 날아가는지,
이 더러운 도시의 검은 대양에서 멀리 떠나,
처녀성처럼 푸르고 맑고 또 깊은
찬란하게 빛나는 또 하나의 대양을 향해?
말해봐요 아가트여, 그대 마음 때때로 날아가는지?

-'쾌활한 사자' 중-
나는 유언도 실고 무덤도 싫다;
죽어 남의 눈물을 빌기보다,
차라리 살아서 까마귀떼 불러
내 더러운 해골 구석구석 쪼아 피 흘리게 하리.


우울

내겐 천년을 산 것보다 더 많은 추억이 있다.

계산서들, 시의 원고와 연애편지, 소송 서류, 연가들,
영수증에 돌돌 말린 무거운 머리타래로
가득 찬 서랍 달린 장롱도
내 서글픈 두뇌만큼 비밀을 감추지 못할.
그것은 피라미드, 거대한 지하 매장소,
공동묘지보다 더 많은 시체를 간직하고 있는 곳.
- 나는 달빛마저 싫어하는 공동묘지,
거기 줄을 이은 구더기들은 회한처럼 우글거리며,
내 소중한 시체를 향해 언제나 악착같이 달라붙는다.
나는 또한 시든 장미꽃 가득한 오래된 규방,
거기 유행 지난 온갖 것들 널려 있고,
탄식하는 파스텔 그림들과 빛바랜 부셰의 그림들만
마개 빠진 향수병 냄새를 맡고 있다.

눈 많이 내리는 해들의 무거운 눈송이 아래
우울한 무관심의 결과인 권태가
불멸의 크기로까지 커질 때, 
절뜩이며 가는 날들에 비길 지루한 것이 세상에 있으랴.
- 이제부터 너는, 오, 살아 있는 물질이여!
안개 낀 사하라 복판에 졸며
막연한 공포에 싸인 화강암에 지나지 않으리;
무심한 세상 사람들에게 잊혀지고 지도에서 버림받아,
그 사나운 울분을 석양빛에서만 
노래하는 늙은 스핑크스에 지나지 않으리.

-'우울' 중-
나는 비 많이 내리는 나라의 왕같아,

-'시계' 중-
진동하는 <고통>이 두려움 가득한 네 심장에
머지않아 과녁처럼 꽂히고,
(중략)
<지금>은 말한다, 나는 이미 <지나간 시간>이다,
더러운 내 대롱으로 네 생명 빨아올렸다!

-'장님들' 중-
아무도 그들의 무거운 머리가 생각에 잠긴 듯
길바닥 쪽으로 숙여진 것을 본 적이 없다.

-'밭 가는 해골' 중-
너희의 등뼈나 껍질 벗겨진
근육의 힘을 다해
파 뒤집는 그 땅에서

무슨 기묘한 추수를 끌어내어,
어느 농가의 광을
채우려 하는가? 말하라.


-'어스름 새벽' 중-
거품 이는 피에 끊기곤 하는 흐느낌처럼,

-'살인자의 술' 중-
아내가 죽어 나는 자유다!
그러니 나는 실컷 마실 수 있다.
돈 한 푼 없이 집에 돌아오면
그녀의 고함 소리 내 가슴을 찢었지.

-'여행' 중-
얄궃은 운명, 목표는 수시로 바뀌어,
아무데도 없는가 하면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인간>은 결코 지칠 줄 모르는 희망을 품고,
휴식을 찾아 미친놈처럼 줄곧 달린다!


경고자

인간이라는 이름을 가질 자격 있는 자는 누구나
가슴속에 한 마리 노란 <뱀>을 가지고 있어,
그것은 옥좌에나 앉은 듯 자리잡고,
"하고 싶다!" 하면, "안 돼!" 하고 대답한다.

여  사티로스나 닉스들이 지켜보는
눈 속에 네 눈을 잠글라치면,
<이빨>은 말한다: "네 의무를 생각하라!"

아이를 낳고, 나무를 심고,
시구를 다듬고, 대리석을 조각하노라면,
<이빨>은 말한다: "오늘 저녁까지 살 줄 아느냐?"

무엇을 계획하건, 무엇을 바라건,
인간을 한순간도 살지 못한다.
이 견딜 수 없는 <독사>란 놈의
경고를 받지 않고는.

-'심연' 중-
파스칼은 심연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늘 붙어다니는 심연.

'이카르의 한탄' 중-
창녀의 정부들은
배부르고 편하고 행복하겠구나;
그런데 나는 구름을 껴안았다가 
팔이 부러졌다.

-25년간에 걸쳐 단 한 권의 시집을 낸 보들레르, 실어증에 걸린 채로 46세의 나이로 참담한 생을 마감한 천재의 시들은 너무도 저돌적이다. 그 자신이 말한듯이, ("이해받지 않는 데에, 또는 극히 조금밖에 이해받지 않는 데에 어떤 영광이 있다면, 나는 이 조그만 책에 의해 대번에 그 영광을 획득했고, 그럴 자격이 있다고, 조금의 허풍도 없이, 말할 수 있다.") 그의 글은 아무에게나 받아들여질 수 있는 그런 글은 아니다. 오히려 고독한 영혼들이 어둠을 감수하고라도 아름다움을 찬미하고자하는 열망을 가지고 공감할 수 있는 글일 것이다.
그의 시에 많이 등장하는 '죽음'의 테마는 그의 삶에 대한 열망을 더 강하게 보여주는 듯하다. 삶과 예술을 결국 사라지게 만드는 구더기들, 시간을 그는 증오했다. 그의 시집의 제목에도 보여지듯, 그가 추구하는 바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이다. 죽음은 그 모든 것을 앗아가는 괴물이고, 시간은 그의 하수인이다. 생전에 얻지 못한 명성을 사후에 얻었다. 그가 증오했던 '거친 날개로 문질러 사라지게 만드는 시간'이 이번엔 그에게 반대로 작용했다. 과연 그는 무덤에서 기뻐할까?
그의 섬뜩한 문구에서도 그가 추구한 아름다움을 본다. 그것은 화려한 비단구렁이의 관능적인 자태를 몰래 엿보는 듯한 등골이 서늘한 아름다움이다. 그는 이미 인간의 삶의 허무를 꿰뚫어 보고 이를 달랠 수 있는 하나의 길, 또한 인간이 가진 유일무이한 능력인, '미의 관조'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의 태양은 그의 시 속에서 언제나 차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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