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0월 30일 수요일

이인성의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 중

흔적, 지운 흔적. 지운 흔적 속에 포함되어 있는 지워진 흔적. 기억의 풍경화 속에 그려지다 지워진 흔적. 태풍을 겪어 만신창이가 된 뒤에도, 그것만은 지우고 싶었던 무엇인가의 흔적. 너무 사무쳐서 숨김이 뒤늦을 수밖에 없었던 그 무엇의 흔적. 풍경화 전체에 사무침을 번지게 하는, 사무침의 샘인 상처의 흔적. 풍경화 뒤에 겹쳐진, 더 먼 시간의 풍경화로 가는 문을 여는 흔적...

미쳤다고 해서,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0시부터 24시까지, 광기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닐진대,, 미치고 싶다 했다가, 미칠 듯했다가, 미쳐지지 않다가, 미쳤다가, 미친 게 싫다 했다가, 미친 게 되고 말았다가 할, 유동체의 그녀에게는, 그러나,, 타인의 눈에 미침으로만 화석화되어 있는 그녀 자신을 마주했던, 그 상황 자체가 가혹한 징벌일 수 있었다. 상황 자체가 가혹한 징벌이었던 사정은,, 아무 개연성도 없이 그녀의 허구에 막무가내로 휘말려들어, 덩달아 미칠 것 같던, 차라리 미쳐버리고 싶던, 네 처지도 결코 덜할 것이 없었다.

그러고도 한참을 막연한 가능성에 매달려 덜컹거릴 그는, 한 작은 마을을 가로질러 나가려다. 문득 야산 앞에 길을 차단당하고 나서야, 더 정확히는, 차를 돌릴 공간이 없어 온 길을 그대로 뒷걸음질쳐 마을 어귀의 구멍가게 앞까지 되돌아와 차를 세우고 나서야, 제가 처한 정황을 파악할 것이다. 뭐에 홀린 게 아닌가 싶게 그가 길을 잃었음을, 헤맬 길조차도 끊겨버렸음을.
잠시, 그는 한낮의 복판에서 한밤에 묶인 모습잉ㄹ 것이다. 멍하니 자신을 놓아버리자, 하늘은 빠른 속도로 컴컴해질 것이고, 해였던 붉은 달이 푸른 구름 사이로 흐를 것이다. 그곳으로 들어왔던 길은 멍석처럼 되말려 어디로 사라졌는지, 돌아나갈 길조차 잃은 그는 그때 그 어디에도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혼잣속 이야기는 미침이었고, 미침은 갇힘이었던 것이리라.

죽음처럼 아득한, 텅 빈 깊이로 물을 감추고 있는 우물이여! 땅속에 고인 둥근 물의 집, 우물이여!

평범한 광증들, 이미 어둠이고 구멍인 존재의 의미를 찾는. 찾는 그 과정 자체가 잠깐이나마 한 송이 꽃으로라도 피었다 지면 다행이련만, 위안이 되련만.

너의 그 울음은, 혹시 하는 지푸라기 잡듯, 하룻동안 유보시켜본들 역시 헛될 것이어서,, 다음날 네가 그 호수가에 가 있겠다는 말에, 시답쟎은 감상주의는 집어치우라고, 신성한 죽음을 모독하지 말라고, 분노에 차서 전화를 끊는 그녀는 이미 너의 그녀가 아니었으매,, 다음날 실제로 달라질 것이라곤, 거사의 장소가 도서관 옥상에서 인문관 옥상으로 바뀐 것뿐,, 비명조차 억눌렸을 햇살 가득한 학교 교정의 공간으로부터,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틀을 짜갔을 예정된 시간으로부터, 모든 것을 알면서도 도망친 것인 동시에 알았기에 쫓겨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던 너는, 오로지,, 엊그제까지 네 곁에 있던 그 죽은 이의 살아 있었음, 그걸 어이 할거나,, 넋이 빠져 몇 끼니를 걸렀는지 상관도 없이, 틀어막고 터뜨리는 울음만의 힘으로, 누구를 용서할 수도 누구로부터 용서받을 수도 없었던 호수가의 밤을 지샐 것이었다.

속을가늠할수없는천길깊이기억의바다가있고
그리고
우리는처음엔무엇이어떻게될것이낙를전혀모르면서그기억의바다에서기억의밥을물어오라고머릿속물고기를끄집어내띄워보낼것인데때로그깊에홀린어떤물고기들이그깊이속으로영영가라앉아머릿속의기억력의세포들이점점이함께사라져도본능적인기억에의허기가커지면커질수록자꾸한마리또한마리무수한물고기들을바닷속저밑으로내려보낼것이나
그러나
물고기들은한마리도돌아오지않을것인데모든물고기들이기억의해저에수장되기때문은물론아니고그바다에서는기억이곧형체없는물이라서다만느낌의물살이라서어떤성질의해류들이라서물고기들이그냥기억의물속에잠겨제몸으로물을품고밀치며저스스로가기억속을떠도는기억의한형상이자유동하는물의형상을순간적으로조가해내는존재로서얕은곳에서깊으곳까지제자리를찾아유영할것이때문으로그래서물위로는아무것도갖다주지않을것이라면
그러면
우리는이번엔기억의형상이된그물고기들을잡아올리기라도하려고그물을드리워내릴텐데기억에의맹목이크면클수록더깊이자꾸깊이동아줄을늘여내릴수밖에없을터라그렇게펼쳐진그물에제물고기들을쓸어담고야말것이긴하겠지만어느새저희들끼리번식하지까지한그물고기들은이미너무많고살쪄무거울것이기에또그물고기들이가있는자리는너무깊어아마도그게더벅찰물살과해류의힘도너무무거울것이기에아무리기를써도끌어올릴힘에는못미칠지니다시는그물을거두을일수없음에도
그럼에도
그깊은물속에서수면까지전해져올것물가에선땅끝의감각에도저릿하게밀려들것그것은순수하게느낌으로만받아들여야하는것이겠지만그그물속에담긴기억의작은형체로서의물고기들이그물속에서뒤척이며일으키는자기들만의또다른물살일것인즉단순한느낌은느낌이라할지라도와닿은감은이상하게구체적인말하자면경험적인느낌으로서희미하게라도기억의형체가변형된기억의무늬와같을것이므로
그로므로
우리는기억의바다표면으로떠오르는그기억의무늬인파도나물거품이일렁이며파열하며소리치며불러들이는아련한추측과그러다보면자연스런짝으로끼여드는상상으로그기억의형체를얼만큼은되살려낼것인바그것이어디까지가사실이고어디까지가허구인지는모를것이되그사실과허구의복합체가전원처럼충전된으로하여
그리하여

......그리하여 홀연히, 그와 그녀, 그들은 기억의 바다를 건너듯 잠적하리라.

양파처럼 끝없이 벗겨지면서도 끝없이 껍질뿐인 것이 있지. 희망이라는 거. 그래서 미치는 것일까, 그 충족되지 않는 희망의 켜를 뜯으면서도 끝내 충족에의 희망에 매달리다가? 무엇이 그토록 그 희망에 미치게까지 하도록 한 존재를 마비시키는 것일까? 머릿속에 부어지는 어떤 독이? 어떤 근원적인 결핍 앞에서, 그 근원적인 결핍이 왜 근원적인 결핍이어야 하느냐고 저항하며 되물을 때의 깊은 슬픔이?
하늘의 암청색 너머에서 칠흑이 쏟아지는 것 같다.


- 대학교 시절, 그렇게도 좋아했던 이인성의 책들. 그 많은 이동에도 20년을 가까이 끌고 다녔다. 가끔식 펴보다가 오늘은 한 권을 꺼내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했다. 그리도 읽어도, 감탄을 자아내는... 그리고 또, 서글퍼지는 책이다.
포스트 모던의 대표적 작가라고는 하나, 나는 그에게서 생의 허무에 대고 실존적 물음을 던지는 인간을 본다. 그의 실험적 문장의 유영속에서 인간 존재에의 깊은 성찰과 고뇌가 묻어있음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인간에 대한 애정이 잔잔히 비쳐난다. 그렇다. 깊이 드리운 그물에서 건져질 것이 무엇이던가? 그 무엇이던가 간에, 끌어올릴 수 조차 없는 것을... 그러나, 인간은 그저 그물을 던지고 그 수면의 파장으로라도 무엇인가를 보려고 노력하는 존재인 것이다. 그 존재자체의 부조리와 허무가 너무도 초라하게 느껴져 고개를 돌리고 싶어질 지라도, 한겨울에 혼자 꽃을 피운 동백처럼 차라리 그 과정이라도 꽃이 되기를 바라는 작가의 마음을 부서질 듯한 문장들에서 조심스럽게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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