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6일 월요일

괴테의 '파우스트' 중

반짝이는 것은 순간만 존재할 뿐이지만,
참된 것은 후세에도 잊히지 않는 법입니다. (작가)

후세라는 말은 하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나까지 나서서 후세 어쩌고저쩌고 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누가 웃겨주나요? (어릿광대)

아무리 자네가 완벽한 작품을 내놓아도
사람들은 어떻게든 그걸 찢어가지고 갈 거야. (단장)

자넨 시인의 그 높은 곳에서 뭘 꿈꾸는가? 
그러면서도 극장이 만원이 되면 좋아하는 건 뭔가? (단장)

사랑에 눈이 먼 저런 바보는
잠시라도 애인을 기쁘게 해주려고
해와 달과 별까지 허공에 쏘아 올리려 한다니까. (메피스토펠레스)

이 세상에서 가장 구역질 나느 게 뭔지 아쇼.
그건 바로 절망에 빠진 악마요. (메피스토펠레스)

여기서 피 맛을 보지 않은 단도는 없어요,
건강한 신체를 먹어치우는 뜨거운 독을
뿌리지 않은 잔도 없지요.
아름다운 여인을 꾀어내지 않은 보석도
없고, 맹약을 깨고서 등 뒤에서
상대를 찌르지 않은 칼도 없지요. (만물상 마녀)

세상의 절반은 흥청망청 먹는 것만 생각하고
나머지는 새 옷을 차려입고 자랑하려 합니다. (집사장)

이게 젊은이에게 주어진 가장 숭고한 소명이오.
세계도 내가 창조하기 전에 있지도 않았어요.
태양을 바다에서 끌어올린 것도 나이고,
나로 인해 달도 차고 이울기 시작한 거요.
낮은 내가 가는 길을 위해 꽃단장을 했고,
푸른 대지는 나를 반겨 꽃을 피웠지요.
그 첫날밤에 나의 눈짓에 따라
하늘엔 별들이 총총했던 거요.
속물근성에 사로잡혀 있는 당신들을 
해방시킨 게 누구죠? 나 말고?
반면에 나는 정신이 일러주는 대로 자유롭게 
그리고 즐겁게 내 내면의 빛을 따를 뿐이죠.
그리고 마음속 희열을 느끼며 잽싸게
눈앞의 영광을 쫓지요. 어둠을 뒤로하고서. (학사)
(퇴장)
이 괴짜 자식아, 네 영광의 길을 가거라!
이런 사실을 넌 뼈저리게 느낄 거야,
이 세상에 멍청한 것이든, 현명한 것이든
옛 사람들이 이미 생각하지 않은 것은 없다고.
그래도 이런 놈은 위험할 것이 없어,
몇 년 안 돼 생각이 바뀔 거거든.
포도즙이 별별 괴상한 모습을 보여봤자
결국 남는 것은 포도주지.
(중략)
그래도 알아둬라, 악마는 나이가 무척 많아,
그러니 악마를 이해하려면 너희도 늙어야 해! (메피스토펠레스)

아무리 이런 풍요로움을 느낀다 해도
갖지 못한 한 가지가 큰 고통을 준다. (파우스트)

그는 어떤 향락, 어떤 행복에도 만족지 못했고,
늘 새로운 뭔가를 찾아 나섰다.
이 보잘것없고 공허한 마지막 순간을
잡아두려 하다니, 불쌍한 사람.
나한테는 그렇게 끈덕지게 저항하더니,
세월은 어쩔 수 없어, 이 노인 모래바닥에 누워 있다.
시계는 멈추었다. (메피스토펠레스)


- 어려서 읽어서 간략한 스토리라인 외에는 기억나지 않는, 그러나 너무도 많은 문학작품에서 회자되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다시 읽었다. 화려한 문장과 다채로운 배경, 순간 순간 바뀌는 장면들이 하나의 서사극을 보는 듯한 느낌. 그러나 나의 문학적 취향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존경받는 지식인인 파우스트 박사가 악마의 도움을 받이 순진한 여자를 농락하고, 그녀의 모친과 오빠를 죽음에 이르게 만들고, 결국 그 여인과 그의 아기마저 죽음에 몰아넣고는 연민이나 탄식없이 이번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헬레네를 쫓아다니는 욕망과 색정에 물든 인간, 권력과 부를 탐하고, 그 얻은 것이 모자라 옆의 노부부의 작은 언덕을 빼앗고자 하는 탐욕, 괴테가 파우스트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였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잠시 등장하는 '학사'라는 인물은 마치 파우스트의 젊은 시절을 엿보게 하는 듯하다. 우주가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듯 느껴지고 숭고한 목표에 자신을 바치는 듯한... 그러나, 메피스토펠레스가 암시하듯 인간은 세월이 지나면 결국엔 욕망과 욕심에 굴복하는 존재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파우스트의 죽음 앞에서 메피스토펠레스는 인간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어떤 행복에도 만족지못하고 늘 새로운 것을 탐닉하고자 하는 욕망을 가진 인간, 본질적으로 인간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족이 없다면 불행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일까? 아니면 인간의로서의 욕망을 충실히 따라간 파우스트의 삶을 추앙고자 한 것일까? 이 책에는 도덕적이며 올바른 방법은 모두 악마적인 술수에 진다. 파우스트가 여인을 얻은 것도 술수와 계략이고, 부와 권력을 차지한 것도 술수와 계략이다. 심지어 마지막에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의 영혼을 천사에게 뺏기는 것도 천사들의 술수에 속아 넘어간 것이다. 집필을 시작한지 70여년만에 완성하고 얼마 후 고인이 되었던 괴테 자신의 모든 것이 녹아있다는 이 대작을 아직 온전히 이해하기는 힘들다. 아마도 그가 썼던 편지에 언급되었듯이 "궁극의 성자가 아니라 위대한 인간이 나타나는 그런 진정한 종교를 향해 내가 날아갈 수 있다면......" 이라는 말처럼 그는 인간의 사랑과 욕망을 신과 악마와 견주어도 좋을 신성한 목록들로 보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선한 것이 좋은 것이라고 믿고자 하는 나에게는 카뮈나 말로의 책들이 더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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