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17일 토요일

지드의 "지상의 양식" 중

......우리의 나아갈 길들이 확실치 않아서 우리는 일생동안 괴로워했다. 그대에게 뭐라고 말해야 좋을까? 생각해보면 선택이란 어떤 것이든 무서운 것이다.

 '중요한 것'은 그대의 시선 속에 있을 뿐 바라보이는 사물 속에 있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평화로운 나날보다는, 나타나엘이여.차라리 비장한 삶을 택하라. 나는 죽어서 잠드는 휴식이외의 다른 휴식을 바라지 않는다. 

기다림! 무엇의 기다림이란 말인가? 하고 나는 외쳤다. 우리 자신으로부터 생겨나지 않는 무엇이 일어날 수 있겠는가?

나는 하늘이 새벽의 기다림으로 전율한는 것을 보았다.

저녁을 바라볼 때는 마치 하루가 거기서 죽어가듯이 바라보라. 그리고 아침을 바라볼 때는 마치 만물이 거기서 태어나듯이 바라보라. 그대의 눈에 비치는 것이 순간마다 새롭기를. 현자란 모든 것에 경탄하는 자이다. 

오, 나타나엘이여 그대의 머리가 피로한 것은 모두 잡다한 그대의 재산 때문이다. 그대는 자신이 그 '모든 것들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지조차 모른다. 그리하여 그대는 삶만이 유일한 재산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나타나엘이여, 나는 더이상 죄라는 것을 믿지 않는다.

내 그대에게 '순간들'을 말해 주리라. 그 순간들의 '현존'이 얼마나 힘찬 것인지 그대는 깨달았는가? 그대가 그대 생의 가장 작은 순간에까지 충분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 것은 죽음에 대하여 충분히 생각을 지속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매 순간이, 이를테면 지극히 캄캄한 죽음의 배경 위에 또렷이 드러나지 않고서는 그런 기막힌 광채를 발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그대는 깨닫지 못하는가?
만약 무슨 일이든 그것을 할 시간이 내게 얼마든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증명되어 있다면, 나는 더 이상 아무 일도 하려고 애쓰지 않을 것이다......(중략)...... 그리고 이 생을 살고 나서 내가 밤마다 기다리는 잠보다 좀 더 깊고 좀 더 많이 망각하는 잠 속에서 쉬게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면, 내가 하는 일이란 그저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은 일밖에 못 될 것이다.

새벽은 왔으나 바다는 가라앉지 않았고, 육지는 아직 멀어 출렁거리는 수면 위에 나의 상념은 비틀거렸다.
온몸에서 가시지 않는 파도의 멀미, 저 넘실거리는 장루에 무슨 상념을 붙들어 맬 것인가 하고 나는 생각하였다. 파도여, 보이는 것은 저녁 바람에 흩어지는 물뿐인가?......(중략)......물결은 지나가고 눈은 그것들을 분간하지 못한다. 형상도 없이 동요하는 바다여, ......(중략)...... 오직 형태만이 돌아다닐 뿐. 물은 휩쓸렸다가 파도와 헤어져 결코 함께 가는 법이 없다. 모든 형태는 지극히 짧은 순간 동안만 같은 존재로 나타날 뿐이다. 각각의 존재를 통하여 형태는 계속되다가 다음에는 그 존재를 포기한다. 나의 영혼이여! 어떠한 사상에도 얽매이지 말라. 어느 사상이든 난바다의 바람에 던져버려라. 바람은 네게서 그것을 걷어내 가리라. 너 자신이 사상을 하늘에까지 가지고 갈 수는 없을 것이다.
부단히 움직이는 물결들이여! 나의 사상을 그처럼 비틀거리게 만든 것은 너희들이다! 너는 아무것도 파도 위에 세울 수 없으리라. 어떤 무게로 눌러도 파도는 달아나고 만다.

시간이 달아나 버리는 것이 나는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선택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 나에게는 언제나 견딜 수 없는 일이었다. 선택이 내게는 고르는 것이라기보다는 고르지 않은 걸 버리는 것으로만 보였다. 시간이 좁다는 것과 시간이 하나의 차원밖에 갖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끔찍한 마음으로 깨달았던 것이다. 폭이 널따란 어떤 것이었으면 하고 바랐지만 그것은 한낱 선에 지나지 않았고, 나의 욕망들은 그 선 위를 달리면서 어쩔 수 없이 서로 짓밟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는 '이것' 아니면 '저것'밖에 할 수 없었다. 만약에 이것을 하면 곧 저것이 아쉬워져서 번번이 애타는 마음으로 두 팔을 벌린 채 아무것도 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중략)......선택이란 영원히, 언제까지나,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리는 걸 의미했다. 
...... 그것밖에 소유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이 나는 두려운 것이다.

봄, 대지의 냄새, 들판에 자욱이 돋아나는 풀, 강 위에 서리는 아침 안개, 그리고 초원에 번지는 저녁의 습기. 나는 수많은 도시를 지나갔고 그 어디에서도 발길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나는 생각하였다. 지상에서 그 무엇에도 집착하지 않고 부단한 유동성들을 뚫고 영원한 열정을 몰아가는 자는 행복하다고. 나는 미워했다. 가정을, 가족을, 사람들이 휴식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곳을. 그리고 변함없는 애정, 일편단심의 사랑, 사상에 대한 집착 - 올바름을 훼손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새로운 것이 나타나면 언제든지 받아들일 수 있는 대기 상태의 자세를 갖추어야 한다고 나는 말했다.

방랑하는 것들은 무엇이든 더 이상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바람은 밖에서 파르르 떨고 있었다. 가정이여, 나는 너를 미워한다!

'이 매혹적인 아침, 이 안개, 이 빛, 이 서늘한 공기, 네 존재의 고동, 네가 이런 것에 송두리째 너를 바칠 줄 안다면 그것들은 너에게 얼마나 더 큰 감동을 줄 것인가. 너는 그 속에 있다고 여기지만 사실은 네 존재의 가장 귀한 부분이 갇혀있는 것이다. 너의 아내, 너의 아이들, 너의 책들, 너의 공부가 그 귀한 부분을 놓아주지 않으 채 네가 신과 접촉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 순간에 너는 생의 벅차고 온전하고 직접적인 감동을 맛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 그 밖의 것을 잊어버리지 않은 채? 네 사고의 습관이 너를 방해하고 있다. 너는 과거에 살고 미래에 살고 있어서 아무것도 자연 발생적으로 지각하지 못한다......(중략)......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네가 알기만 한다면, 너는 이 순간 아내도 자식도 잊어버리고, 지상에서 홀로 신 앞에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너는 그들을 기억하고, 마치 너의 모든 과거, 사랑, 지상의 모든 관심사를 잃어버릴까 봐 겁이 난다는 듯 떠 짊어지고 다니는 것이다.

쓰러진 나무들 위에 내리는 가을빛이 찬란했다. 그 광경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도 나는 다른 것은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기서 늙음을 보았던 것이다.


내가 나의 신변에 일어난 사건들 덕택에 행복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하지 말라. 사건들이 나에게 유리하긴 했지만 나는 그것들을 이용하지는 않았다. 나의 행복이 부유한 재산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믿지도 말라. 지상에 아무런 집착도 갖지 않는 나의 마음은 항상 가난하였다. 그러므로 죽기도 수월할 것이다. 나의 행복은 열정으로 이룩된 것이다.


나날이 있고 또 다른 나날이 있다. 수많은 아침과 저녁이 있다. 
무감각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 채 새벽이 되기도 전에 일어나는 아침들이 있다. - 오! 가을의 회색빛 아침! 휴식을 취하지 못한 영혼이 지칠 대로 지치고 타는 듯한 불면에 시달린 나머지 못 더 자고 싶어 하며 죽음의 맛을 헤아려 본다.

메날크여, 떠남에서 그대가 그토록 좋아하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그는 대답한다. - 미리 느껴지는 죽음의 맛이라고

떠나자! 그리고 그냥 아무 곳이서나 발길을 멈추자!

나는 어슬렁거리며 떠도는 모든 것을 스칠 수 있기 위하여 스스로 어슬렁거리며 떠도는 자가 되었다. 어디서 따뜻하게 몸을 녹여야 할지 모르는 모든 것에 대하여 나는 따뜻한 정으로 반해 버렸고 그리하여 모든 것을 열렬하게 사랑했다.

생각이 많아 잠을 자지 못한 사람의 얼떨떨한 머리. 떠나야만 하는 장소들. 조그만 방. 여기서 잠시 동안 나는 머리를 기대고 쉬었다. 나는 느꼈다. 생각했다. 밤을 세웠다. - 사람들은 죽는다! 어디서든지. (살기를 그만두게 되면 거기가 곧 아무 데나이고 아무 데도 아닌 것이다.) 살았기에 나는 여기에 있었다.
두고 떠난 방들! 결코 한 번도 슬픈 것이기를 바라지 않았던 출발의 황홀함. 열광은 언제나 여기 이것을 지금 소유하는 데서 왔다.
그러므로 한순간 여기 이 창문에 기대어 내다보자...... 떠나야 하는 순간이 오고야 만다. 지금 이 순간이 떠나야 하는 순간 직전의 순간이기를 나는 바란다....... 거의 끝나가는 이 밤 속에서 행복의 무한한 가능성을 향해 몸을 기울이기 위하여.
참한 순간이여, 광대한 창공에 여명의 물결을 부어라......

가을날 벌판에 소나기를 맞으며 외따로 서 있는 나무. 벌겋게 물든 잎새들이 떨어지고 있었다. 깊이까지 젖은 땅속에서 물이 오랫동안 그 뿌리를 적셔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신의 계명들이여, 너희가 나의 영혼을 병들게 했다.
너희는 내가 목을 축일 수 있는 유일한 물 주위를 벽으로 막아놓았다.

멋들어진 집들이 있다. 그러나 어느 집에서도 나는 오래 머무르고 싶지 않았다. 닫히는 문들이, 함정들이 두려운 것이다. 정신을 가둔 채 닫히는 밀실.


(나타나엘이여, 이 새로움을 찾는 극성스러운 욕망을 그대에게 설명할 수는 없다.......(중략)......매일 같은 무어인의 카페를 찾아가 저물어가는 시간을 보낸 것은 저녁마다 달라지는 각 존재의 미묘한 변화를 감지하기 위해서였고 시간이 아주 작은 공간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모습을 바라보기 위해서였다.)

흐느낌. 꼭 다문 입술. 너무나  큰 확신들. 상념의 고뇌. 내 무어라 말할까? '진정한 것들' -타자- '그의' 삶의 중요성. 그에게 말할 것......

나타나엘이여, 나의 책을 던져버려라. 거기에 만족하지 말라. 너의 진실이 어떤 다른 사람에 의하여 찾아진다고 믿지 말라. 그 점을 무엇보다도 부끄럽게 생각하라. 내가 너의 양식들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너는 그걸 먹을 만큼 배고프지 않을 것이다. 내가 너의 침대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너는 거기에서 잠잘 만큼 졸리지 않을 것이다.
내 책을 던져버려라. 이것은 인생과 대면하는 데서 있을 수 있는 수많은 자세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을 명심해라. 너 자신의 자세를 찾아라.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도 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 하지 말라. 너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도 말할 수 있었을 것이라면 말하지 말고 - 글로 쓸 수 있었을 것이라면 글로 쓰지 말라. 너 자신의 내면 이외의 그 어는 곳에도 있지 않을 것이라고 있는 것에만 집착하고, 그리고 초조하게 혹은 참을성을 가지고 너 자신을 아! 존재들 중에서도 결코 다른 것으로 대치할 수 없는 존재로 창조하라.


- 지드의 '지상의 양식'을 읽으며 그의 표현과도 같이 잘 익은 과일을 나무에 손을 뻗쳐 따 한 입 깨물어 그 과즙이 목을 타고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의 삶에 대한 태도는 너무도 적극적이고 열렬하여 벼랑에서 떨어질듯한 불안감을 가지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 될 듯 느껴진다. 그는 인생의, 삶의 열쇠를 외부로부터 빼앗아 각자의 개인의, 우리의, 나의 손에 쥐어준다. 삶의 주체로서, 주인으로서, 내가 선택한 삶이 어디로 향하든지 간에 그 책임을 질 인간으로서, 또한 그 여정을 인식하고 감탄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로서, 받아쥔 열쇠를 손을 펴 대면하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과연 내게 있을까?라는 물음을 스스로 던진다. 인간에게 주어진 그 초라하고도 위대한 순간을 이 눈부시게 풍성한 지상이라는 곳에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우리에게 다시 각성시켜준 지드에게 감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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