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3일 월요일

카뮈의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 중

사람은 어느 한 극단으로 쏠림으로써가 아니라 양 극단에 동시에 닿음으로써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준다.
-파스칼-


'첫 번째 편지' 중 (1943년 7월)

나는 자신이 추구하는 목적에 모든 것을 다 바쳐야 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용서받을 수 없는 수단들이 있습니다.

전쟁을 경멸하면서도 투쟁을 한다는 것은, 행복에 대한 열망을 간직하고 있으면서도 모든 것을 잃을 각오를 한다는 것은, (중략) 우리는 우리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당신들에게는 마음에도, 지성에도 극복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두 가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하기에 억제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당신들과는 달리 우리는 무기를 가지고 승리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억제할 것이 많았습니다. 우선 당신들과 닮은 짓을 하고 싶은 유혹부터 뿌리쳐야 했습니다. 우리 마음속에는  항상 지성이 시키는 것을 모른 체하고 오직 효율성만을 중시하여 본능에 휩쓸려버리고 싶은 무엇인각가 있으니 말입니다.

우리에게 인간을 죽일 권리가 있는 것인지, 이미 충분할 만큼 가혹한 이 세상의 비참함에 또 다른 비참함을 덧보태도 되는 것인지 알기 위해서 우리에게는 그 모든 시간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예전에 가끔 생각하던 것과는 달리, 정신이 검을 당할 수 없지만 검과 힘을 합친 정신은 한갖 검일 뿐인 검에 대해서 영원한 승리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거기서 배웠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이 우리 편임을 확신하고 난 우리가 이제 검을 뽑아 들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보아야 했고 스스로 죽음의 위험을 무릅써야 했습니다. (중략) 사람은 스스로 대가를 지불한 것만을 제대로 소유하는 법입니다. 우리는 비싼 대가를 지불했고 앞으로 더 지불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확신과 이유들과 정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들의 패배는 피할 길이 없습니다.

이 나라는 수많은 오류와 약점들에도 불구하고 그 위대함의 근본인 생각을, (중략) 생각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중략) 나는 그런 나라의 국민입니다. 내 나라는 나의 어렵고 까다로운 사랑으로 사랑할 가치가 있습니다. (중략) 반대로 당신의 나라는 그 국민으로부터 그 나라에 대한 합당한 사랑, 즉 맹목의 사랑밖에는 받을 자격이 없다고 나는 말할 수 있습니다. 아무 사랑이든 사랑만 받으면 다 정당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당신은 이 점에서 패한 것입니다. 그런데 가장 혁혁한 승리를 거둘 때 이미 패배한 당신이없으니, 이제 다가오는 패배 속에서 당신은 과연 어떻게 되겠습니까?


'두 번째 편지' 중 (1943년 12월)

마음속에 확신이 생긴다고 해서 반드시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경계하는 것은 오히려 나 자신입니다. (중략) 폭군과 신을 결국은 버리고 마는 힘이 바로 인간입니다. 그것은 자명함의 힘입니다. 우리가 보존해야 할 것은 인간적인 자명함입니다. (중략) 만약 의미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당신의 생각이 옳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의미 있는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당신들의 희생에는 아무 보람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치의 우선 순위가 잘못되어서 당신들이 중시하는 가치들이 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네 나라에서는 신들조차 전쟁에 동원된 것입니다.


'세 번째 편지' 중 (1944년 4월)

그 모든 풍경들, 꽃들, 경직지들은, 세상의 땅 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그 땅은 봄이 올 때마다 세상에는 당신들이 피 속에서 질식시키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주기 때문입니다.


'네 번째 편지' 중 (1944년 7월)

그러나 당신들은 기어이 일을 저질렀고 우리는 역사 속으로 끌려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5년 동안, 서늘한 저녁의 새소리를 즐기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절망해야 했습니다. (중략) 5년 동안 이 땅 위에서는 아침마다 죽음의 고통이 있었고 저녁마다 투옥이 있었으며 점심때면 살육이 행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뒤를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어렵지만 잘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당신들을 따라 전쟁에 뛰어들었으면서도 결코 행복을 잊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고함과 폭력 속에서도 우리는 행복했던 바다와 결코 잊어본 적이 없는 언덕의 추억을, 소중한 미소를 한사코 가슴속에 간직하려고 했습니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가지 최고의 무기였습니다. 우리는 그 무기를 결코 내려놓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것은 절망적인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토록 엄청난 불의를 당해야 할 이유가 없음을 증명해 보여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스스로에게 부여한 책무입니다. (중략) 곧 동이 틀 것이고 당신들은 패배할 것입니다. 당신들이 저지르는 잔혹한 승리를 못 본 체하며 무관심했던 하늘이 당신들의 당연한 패배에도 무관심할 것임을 나는 압니다.


- '정의'에 대한 무한한 신뢰가 있을 수 있다면, 이 순진한 인간의 옹호자, 카뮈가 아닐까? 나치의 불의에 대하여 그가 '독일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라는 형식으로 써내려간 산문을 보면, 모든 것이 혼돈과 파괴 속에 몰아붙여진 세계대전의 상황 속에서 분명하고 명료하게 무엇이 잘못인지를 칼로 끊는 듯한 문장 속에서 짚어가고 있다. 이 잔인한 살육과 폭력속에 그는 분명히 절망하였음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에게 절망이 끝이 아님을 피로 적셔진 대지가 틔워내는 봄꽃처럼 인간에게 옳은 것, 정의로운 것, 인간다운 것이 옳은 승리를 결국에 이뤄낼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부럽다. 사랑할 가치가 있는 조국을 가진 카뮈. 나치 지지자에게는 아무리 싸워서 승리한다 하더라도 그들의 조국은 사랑할 가치를 가지지 않았기에 그들의 승리는 의미가 없고 그들의 희생은 허무하다는 것을 꼬집어 내는 카뮈. 후에 불란서가 마다카스카르의 폭동에 대해 나치와 같은 불의로 대하는 것을 보고 개탄에 마지 않는 카뮈지만 이 글을 쓸 당시의 조국은 그에게는 피를 흘려 지킬 정신을 지닌 가치있는 조국이었다. 그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조국을 가진 것이 나는 매우 부럽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인의 독일에 대한 맹목의 사랑이 아닌 진정한 의식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는 나라가 나에게는 있는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음을... 그러나 이 회보라의 안개로 둘러싸인 세계 속, 그래도 찾아야 할 의미와 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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