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14일 화요일

에밀 졸라의 '목로 주점' 중

젊은 여인과 함석공은 한 달 내내 사이가 좋았다. 쿠포는 제르베즈가 용기 있는 여자라고 생각했다. 허리가 휘도록 일하고, 아이들을 돌보고, 밤이면 닥치는  대로 바느질감을 찾아 일을 하는 여자였다. 세상에는 정직하지 않은 여자들, 먹고 마셔대며 흥청망청 사는 여자들도 있다. 진정 제르베즈는 그런 여자들과 달랐다! 너무도 진지하게 살아가지 않는가! 이말을 듣자 제르베즈는 웃음 띤 얼굴로 조심스럽게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불행히도 그렇제 얌전하게 살지만은 않았다며, 이미 열네 살에 첫 출산을 했다는 걸 넌지시 언급했다. 어머니와 함께 아니스 술을 몇 병이나 비운 적도 있다는 얘기도 다시 꺼냈다. 산전수전 겪다 보니 조금 좋아진 것뿐이에요. 특별히 의지가 굳은 거라고 생각하진 마요. 오히려 굉장히 약한 걸요. 누군가 밀어대면 그냥 밀려가죠. 그 사람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요. 그녀는 올바른 사회에서 사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나쁜 사회는 도축장의 도끼처럼 사람들 머리를 부서뜨리고, 순식간에 여자를 짓뭉개버리죠. 앞날을 생각하면 식은땀이 나요. 난 공중에 던진 동전과 같은 처지죠. 땅에 떨어질 때 앞면이 나올지 뒷면이 나올지 아무도 몰라요. 그냥 지금까지 보아온 것들, 어릴 때 나쁜 예들을 너무 많이 봐서 잊지 못할 교훈을 얻은 것뿐이에요.

집을 얻는 날 쿠포 부부는 계약서에 서명을 하러 갔다. 그런데 제르베즈는 큼지막한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이제 계단과 복도가 이리저리 만나고 갈라지면서 끝없이 이어진, 거의 작은 도시 하나만 한 이 건물에서 살아가게 된다. 잿빛의 건물 정면은 창문마다 햇볕에 말리느라 누더기 같은 옷들을 널어놓았고, 음산한 안마당은 광장처럼 포석이 깨져 있었다. 작업작에서 웅웅거리는 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을 들으며 제르베즈는 심란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드디어 고대하던 꿈에 다가갔다는 기쁨이 있었지만, 동시에 정말 성공할 수 있을지 두려움도 있었다. 굶주림이라는 괴물, 지금 자기 귀에 숨결을 뿜어내고 있는 괴물에 맞서 치러내야 할 엄청난 싸움이 온몸을 짓누르는 것만 같았다.

결국 빚은 다시 450프랑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는 한 푼도 더 갚아나가지 못하고 받을 세탁비로 제해 나가고만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제르베즈가 일을 덜 한다거나 가게가 잘 안 돼서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정반대였다. 그런데도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 같고, 돈이 저절로 녹아 없어지는 것만 같았다. 제르베즈는 대충 당장 쓸 돈만 있으면 만족했다. 어쩌겠어! 먹고 살 수 있으면 된 거지. 너무 불평할 필요는 없잖아? 이즈음 제르베즈는 살이 쪘다. 그리고 살이 찌면서 자질구레한 일들을 쉽게 포기해 버렸다. 더 이상 미래를 생각하면서 두려워할 힘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 계절이 바뀔수록 이 부부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진 것은 자기들 잘못이다. 하지만 당사자들은, 특히 비참한 가난 속에 허우적대는 인간들은,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은 늘 운이 없다고, 신이 자기를 미워한다고 주장했다. 이제 집안은 엉망진창이었다. 둘은 하루종일 으르렁거렸다. 아직 치고받지는 않고 말다툼이 격해지면 몇 번 따귀를 날리기도 했다. 가장 슬픈 일은 이미 애정의 새장에 문이 열렸기 때문에 그 안에 있어야 할 감정들이 새장 밖으로 갈아가는 카나리아처럼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이 좁은 집 안에 포개져서 서로 살을 맞대고 살아가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식 사이의 따뜻한 마음은 사라져버렸다. 각자 자기 구석에 웅크린 채 바들바들 떨었다. 쿠포와 제르베즈, 그리고 나나 셋 모두 건드리기만 해도 화를 냈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증오가 가득한 눈으로 잡아먹을 듯이 덤볐다. 무언가가 끊어져 버린 것 같았다. 가족을 지탱하는 태엽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가족의 심장을 함께 뛰게 해주는 장치가 고장 나버린 것이다. (중략) 저 인간은 도대체 언제 죽어버릴까?

사나흘 계속 영감의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이웃 사람들이 문을 열어보며 죽은 게 아닌지 살폈다. 아니다. 영감은 살아 있었다. 제대로 살아 있는 건 아니고, 죽지 않아 살아 있었다.

방 전체에서 풍겨나오는 알코올 냄새 때문에 머리도 지끈거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등 뒤에서 이상한 기운이 느껴지며 불안이 엄습했다. 돌아보니 증류기가 있었다. 사람들을 술 취하게 만드는 기계는 안마당 안 유리로 덮인 곳에서 지옥 성찬의 전율을 퍼뜨리고 있었다. 밤이라 둥근 옆부분에 커다란 별 모양 등불 하나가 달려 있고, 증류기의 구리는 더 음침해 보였다. 안쪽 벽에 흡사 꼬리 달리 괴물이 이 세상을 집어삼키려고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것 같은 기괴한 모습의 그림자가 보였다.
(중략)
제르베즈는 뒤쪽에 있는 증류기를 곁눈질로 쳐다보았다. 가마솥처럼 생긴 게 땜장이 마누라의 뚱뚱한 배 같았고, 거기에 구불구불 기다란 코가 부은 것 같았다 보고 있노라니 어깨에 전율이 일었다. 욕망이 뒤섞인 공포 같은 것이었다. 그랬다. 그것은 꼭 덩치 큰 매춘부, 마녀의 배 속에 들어앉은 금속 장기 같았아. 창자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불길을 뽑아내고 있는 것이다. 진정 독물이 흘러나오는 샘이 아닌가. 저런 건 지하실에 묻어버려야 한다. 너무도 뻔뻔하고 가증스러우니까! 그런데도 제르베즈는 자꾸만 저 안에 코를 담그고 냄새를 맡고 싶었고 저 더러운 것을 맛보고 싶었다. 설사 혀를 데고 오렌지 껍질처럼 벗겨지더라도 말이다.
(중략)
두 번째 술잔을 삼키자 더 이상 배고픔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제 그녀는 쿠포와 화해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원망하지도 않았다. 
(중략)
그녀는 이제 정신없이 들이켰고, 메보트를 '내 아들' 이라고 불렀다. 등 뒤에서는 술 취하게 만드는 기계가 여전히 웅웅거리며 땅 밑으로 개천이 흐르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저 기계를 멈출 수는 없으리라. 저 안에 든 걸 다 마셔 없애버릴 수는 없으리라. 
(중략)
하지만 얼이 빠져버린 듯한 제르베즈의 얼굴을 본 순간 랄리는 떨면서 뒷걸음질 쳤다. 독주 냄새를 풍기는 숨결, 흐리멍텅한 눈, 일그러진 입, 모두 아이가 익히 알고 있는 것들이었다. 제르베즈는 아무 말 없이 비틀거리며 지나갔고, 문간에 선 랄리는 어두운 눈길로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인간이 무슨 일에도 익숙해진다고 하지만, 불행하게도 먹지 않고 지내는 것만은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이것만은 제르베즈를 힘들게 했다. 인간 말종이 되어 시궁창에 떨어진 것도, 자기가 지나갈 때 옆 사람들이 더럽다고 옷을 터는 것도, 다 아무렇지도 않았다. 아무리 험한 대접을 받아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속이 주리면 늘 창자가 뒤틀렸다. 



- 고된 현실과 잘못된 사회가 세월의 인간을 승리할 때 느껴지는 비릿한 씁쓸함. 
주인공인 제르베즈는 열심히 살아보려고 애썼다. 더러운 환경속에서 세탁부로서 더러운 것들을 깨끗히 빨아 돈을 버는 제르베즈는 유혹도 거부하려 했고, 아이들을 잘 키우려고 했고, 돈을 모으려고 했고,  그저 열심히 살아보려 했다. 그녀는 착한 성품이었고, 가난한 이웃에게 친절했으며, 무엇보다도 열심히 일했다. 그녀의 꿈은 굶지않고 깨끗한 집에서 사는 것, 그것 뿐이었다.
남보다 열심히 일하는 제르베즈는 그 꿈에 다가가는 듯 했으나 결국 그녀는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굴복하게 된다. 허영과 과시욕에 굴복하고, 식탐에 굴복하고, 게으름에 굴복하고, 타락에 굴복하고, 이웃의 질시와 험담에 굴복하고, 그녀가 혐오해 마지않던 음주에 굴복한다. 그럼으로서 서서히 몰락해가는 인간, 열심히 살아보려고 그렇게 발버둥쳤으나 서서히 죄어드는 환경의 덫에 어쩔 수 없는 나약한 인간을 에밀 졸라는 그려내고 있다. 바르고 굳건한 인물이면서 제르베즈를 흠모하는 대장장이 구제라는 인물조차 산업화의 기계들에 의해 설 곳을 잃어가는 모습에서 졸라는 산업화의 수레바퀴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희생되는 소시민의 비극을 너무도 생생한 필치로 묘사하고 있다. 
소설의 구성 속에서 처음부터 굳건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목로주점, 독주를 만들어내는 그 곳, 만이 당당한 위치를 점하고 개인의 비극의 즙을 짜 다시 그 원료로 삼아 소시민의 고통의 수레바퀴를 시대를 거듭해 계속 돌릴 듯하다. 물론 주인공인 제르베즈의 불행이 그녀의 잘못으로부터 비롯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 있으나 졸라는 처음부터 제르베즈 스스로 자신의 나약한 의지를 인정하고 사회에 던져진 동전 하나처럼 미미한 존재임을 암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개인들의 비극적 삶이 사회의 책임과 무관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했음을 한 개인의 안타까운 삶을 통해 역설하고자 했던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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